금천뉴스
기고 & 사설
가을은 생애를 키운다- 홍경흠
.  |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10.01  19:26:1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가을은 거짓말을 못한다. 노력한 만큼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조롱과 분노로 가을을 맞이한다면 수확은 조롱과 분노로 끝난다. 한 해의 네 철 가운데 셋째 철. 여름과 겨울의 사이이며, 달로는 9~11월, 절기(節氣)로는 입추부터 입동 전까지를 이른다. 시종 환한 웃음으로 끝났으면 한다.

 이도 저도 괜히 신나는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리면, 그냥 있기가 어색해서 말을 걸어볼 수밖에 없다.‘뭐가 급해서 이렇게 빨리도 달려 왔냐?’묻지 않을 수 없다. 말없이 그냥 있다. 시간을 허비한 대가가 아닐까 짐작한다. 어쨌든 조용했지만 희미한 공허 그 자체가 몰려왔다.

 아침과 저녁엔 조금 쌀쌀할 정도의 기온이다. 동백이 오기 전에 코스모스가 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있다면, 날씨와 하늘이다. 뭉실뭉실 떠오르는 새털구름이 왠지 정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늘빛과 너무 잘 어울리는 코스모스에 앉아 있는 잠자리가 정겹다.

 살아오면서 낯선 환경과 세월에 맞서 열심히 근육운동을 한 이파리들은 아직도 여유롭게 가을을 즐기고 있다. 몸의 따스한 곳에서 열기가 올라왔으리라. 가을이 무서울 리가 없다. 편한 것만 좋아하다가 서늘한 날씨가 포위를 할 때 비로소 열심히 몸을 가꾼들, 시간은 기다려 줄까. 결코 아니다.

 시대와 환경과 세상의 인심들은 변하였어도 자연의 섭리는 무엇 하나 바뀐 게 없다.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모두의 것인 자연은 사소함 너머를 읽는 촉이 뛰어나 들뜸이나 과장 없이 차분하게 자기의 세계에 충실하다. 그런 삶, 그것이 가을이다.

 빛깔 고운 뭉게구름 그늘에서 귀뚜라미가 목청을 돋우면, 여름 내 숨 가빴던 초록 숨결들, 벼, 들깨, 녹두, 콩, 고추, 조, 수수, 밤, 대추, 옥수수가 멍석에서 뒹군다. 한없이 좋긴 한데, 삽 곡괭이 호미 지게에게 미안하다. 그곳에서 오곡백과가 뚜벅뚜벅 걸어 나와 식탁이 풍성하기 때문이다.

 벌써 내년에 씨 뿌릴 종자는 어떤 것이 좋을까? 로 고민할 것도 없이 가장 실한 것들을 고르고, 썩지 않게 보관하는 계획을 세우는, 마음을 다잡는 겸손한 자세는, 이미 가장 튼튼한 열매를 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굽이치는 풍파의 골짜기를 무탈하게 지나가도록 남몰래 조심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모두가 사랑했던 자리에 가을이 오가고 있다. 그런 자리에 싸한 바람이 불면 많은 이들이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스스로 다짐을 통해, 타인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때 병풍처럼 둘러쳐진 삶의 굴레에 밀려드는 회한에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곧바로 겨울로 가는 수가 있다.

 가을을 태운 넋들, 저녁노을로 입술을 촉촉하게 적시며, 흘러가는 가을에 빗장을 걸 때, 밤바람이 산발하고 덤비면 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다. 이런 위태에는 달빛도 깨어져 갈 곳을 잃고 방황한다. 우리 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제 몸을 찢어 꽃을 피우자. 그것이 성공한 생애로 가는 길이다.

 옷깃을 여미고 낮은 곳으로 내려앉는 노란 은행잎을 본다. 나는 그대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겨울을 이길 수 있는 창호지를 발라줄까? 새 생명 틔우는 거름으로 발효되게끔 미생물이 되어 줄까? 생각이 깊어지고, 뇌 구석구석까지 밀려들어오는 확신 하나 둘, 그것은 어쩌면 모두의 기대치가 아닐까.

 더 생각하지 않아도, 영그는 가을, 그리고 가을은 가고 남은 건 흩날리는 서늘한 바람뿐일 때, 내 휘파람 소리를 기억하는 이 있을까? 문득문득 자신이 낯선 사람처럼 보이고, 사용하는 언어도 생소하고, 정작 주고받는 것은 나 뿐일 때, 하염없이 길 위를 걷자. 그기에 해답이 있다.

 그냥 길을 걷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가을! 가을의 소리를 귀담아 듣자. 한 시간이든 하루든 한 계절이든 단 몇 초든, 뒤틀려 살지 말자. 미워했던 것들도 그리워지는 가을이 아닌가. 내가 아프니까 남을 사랑하게 되면 너무 늦다. 물어뜯거나 물어뜯기는 것도 결국 제 자신의 일이다. 가을이 전하는 묵언이다.

 

< 저작권자 © 금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금천뉴스 서울특별시 금천구 금하로 793, 113,114호 (시흥동 벽산 1단지상가)  |  대표전화 : 02-803-9114  |  팩스 :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민주
등록일 : 2011.10.28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04923   |  발행인 : 배민주   |  편집인 : 노익희
Copyright ⓒ 2011 금천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cn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