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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기를 요하는 글쓰기-송골김성호(시인, 성미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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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1.28  13: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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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생물은 암수 교합의 잉태부터 시작된다. 생명의 숨결을 스스로 갓 내쉬기 시작한 배냇머리 신생아는 부모의 지극정성 한 돌봄을 받는 그때부터 인체와의 교류를 시작한다.
연령에 맞추어 성장을 거듭하면서 부모 외의 이웃들과도 젖내 눈을 맞추며 세상을 점차 깨워나간다.
이른바 의사소통이다. 역으로 정서적 경험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소통 불가능한 역류를 보인다면 ‘감정표현불능 자’로 분류된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은 이런 말을 곧잘 내놓는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야기 쓴다면 한 트럭분 원고 량은 충분히 될 것.’ 그렇다. 인생 연령이 긴 어르신일수록 시대별 풍습, 역사별 사건·사고, 처와 자녀들을 먹여 살리려 손발 터지는 줄 잊고 내공 쌓은 직업의 노하우, 한바탕 혼욕을 치렀던 국가적 혁명 및 자연재해에 풍덩 빠졌다 살아난 기적, 이 밖에 슬하의 아들딸들이 안겨준 손 자녀 등등의 소재거리 무궁무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글로 옮겨 담을 경우 원고 량 100장은 나올까? 대답은 ‘아니요’이다. 부풀린 거품 빼고 별 의미도 없는 정보 나열 빼면 분량은 그만큼 확 줄어들기 때문이다. 
  두서없는 말이 횡설수설이듯이 문장 역시도 읽음에 식상 감을 불러일으킨다거나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고개를 돌리게 한다면 뒤에서 버려지는 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잠수의 작가들은 능력과 상상의 재주가 체력적으로 받쳐만 준다면 일 만장의 원고도 무난하다. 어떻게 쓰는지를 훤히 알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펜을 들고 글쓰기 도전에 나선 사람들의 대다수는 자기가 쓰고 자는 내용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대단히 넓다는 우월감에 도취되는 경향이 높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기막힌 이야기라 자랑거린다. 그러다 막상 대중들에게 공개할 예정의 책이라는 그릇에 담기 시작하면 보잘 것 없다는 점을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뇌리를 때린다.
제 딴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훌륭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해도 흐름이 자연스러운 주관적인 관점이 없다면, 의지가 꺾이는 난타의 굴욕은 불가피하다. 
  글은 읽는 독자와의 만남이다. 글은 독자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다. 글은 독자로 하여금 경험이나 체험을 간접적으로 체득하게 한다. 
  사실을 거짓으로 둔갑해 말한다면 허설이다.
그 사실과 거짓의 차이를 가려내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다. 신문기사는 중학생 수준에 맞추어 써야 한다. 좋은 글은 잘 짜여 군더더기 없이 쉽사리 읽히는 문장이다.
  문장은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단어 엮음이다. 어휘력의 폭이 넓을수록 문장을 꾸며나가는데 선택적 유리에 설 수 있다는 뜻이다. 이의 내공은 독서에서 쌓아진다. 문장의 호흡은 독서에서 나온다.
독서는 산만하게 흩어진 생각을 한데로 모으는 정리의 힘이 있다. 아리송했던 이해 부족을 분명하게 깨칠 뿐만 아니라, 알지 못했던 지식을 덤으로 습득하게도 한다. 또한 성찰에 다다르는 지름도 알게 된다. 아는 만큼 선지식에 눈은 떠지기 마련이다. 
  읽기는 ‘나도 써 볼까.’의 유혹에 빠져들게 한다. 단어를 찾아 좇는 기나긴 여정 길에 오르게 하는 기저이다. 문장의 체력은 독서에서 길러진다.
반대로 독서에 단련(습관)이 되어있지 않으면(독서량이 적으면) 그 문장은 어김없이 빈약함으로 나타난다. 작가 성을 기르는 준비생들에게서 흔히 볼 수 현상이다. 이론은 머리에만 담아둔 개인의 그림이지, 독자들 앞에 실체적으로 풀어놓은 문장은 아직은 아닌 것이다.  
  내 평생의 길과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의 나다운 삶은 나의 발로 여기저기 둘러보고, 나의 밝은 눈으로 본 사물을 나의 주관으로 깨달아 발굴하고, 그 나의 일을 갈고 닦는 것이다.
구속과 의무에 매여 있으면 초인이 될 수 없다. 구속은 자신에게 감금되어 있는 철장 안이고, 의무는 자신 안에서만 움직이는 틀이다. 자신을 끌어 모으는 시간 사용이 적은 사람은 창의력을 생산해 낼 수 없다.
사고(師古)가 터있지 않아 운신의 폭이 좁다. 나이 먹는 생물은 성장을 보여야 내외적으로 살아있다는 인증을 받게 된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을 일깨우는 자존감이 부족하다. 다시 말해 자신 확립인 철학이 빈곤하다. 철학은 인체의 뼈대이다.
철학은 삶의 기준이다. 철학은 존재가치·이성의 인식을 높여주는 학문이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일수록 두말할 나위 없이 좌우로 흔들리지 않는 공무철학의 힘이 진실해야 한다. 
  훈련이 부족한 초보 작가들의 첫 번째 관문은 막막함이다.
백지 응시는 그만큼 고통이 깊다. 글쓰기 방법을 모르기에 겪는 비관 성 현상이다.
기회 포착은 자리 잡힌 밑절미에서 힌트를 얻는다. 시도는 지금부터 출발임을 말한다. 꿈의 상상으로 그려보지 않으면 염원의 착륙은 요원하다. 아이작 뉴턴(1643~1727.잉글랜드. 수학자·물리학자)은 힘의 작용으로 사과가 떨어지는 장면에서 ‘만유인력’의 틀을 다진 사람이다. 
  어린아이들의 놀이일 수 있는 손 주먹만 한 눈을 계속 굴리면 눈사람이 만들어진다. 하늘을 품은 가슴에는 노래의 날개가 있다. 자유의지는 판에 박힌 규격을 깨트리는 데서 넓어진다.
일단 무엇이든 써봐야겠다는 도발이 서야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말보다 펜을 쥔 손을 계속 움직여야 자존감이 높아지는 글쓰기가 풀린다. 
  생각한 만큼 주체로 정한 표현이 물 흐르듯이 잘 풀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훈련(반복)의 과정을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유지한 사람은 불필요하게 불린 하마몸집의 살덩이를 대폭 깎아낸다. 문장을 줄이는 기술로 한 글의 간격을 압축적으로 좁힐 줄 안다.
  무쇠도 갈면 바늘이 된다. 문맥을 매번 새로 맞춰 끼어 넣는 글 쓰는 일은 고되게 힘들다.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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