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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삶을 위하여 - 홍경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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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4.27  12: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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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계절이 시작되었다. 연둣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산을 보며 잠시 코로나 팬데믹을 벗어나나? 생각해 보았지만 우울해질 뿐이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니 매우 나쁨이다.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환경 보호에 동참하는 것은 쉬운 선택은 아니지만, 자발적 참여이어야 큰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 이후 선진국들은 탄소 제로 실천을 위해 화석연료를 친환경 대체에너지로 전환하는 일에 주력해왔다. 우리도 기술 혁신을 통해 맑은 공기를 마시도록 다 같이 노력하기를 희망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동식물은 공기를 몸속에 끌어들여 생명을 유지한다. 공기가 더러워지거나 파괴되면 현재도 미래도 없다. 오염된 공기를 들이쉬거나 물속에 들어가면 몇 분 혹은 1~2분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가. 지금이라도 맑은 공기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아야 한다.
 
 문명의 경이적 발달로 온실가스가 과도하게 배출 되고, 이로 인해 공기 체계가 미세하게 흔들리게 되었다. 통계 자료에 의하면 지구 온도가 0.5도 더 오르면 2060년까지 1억 5,000만 명이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예측은, 우선적으로 기후 위기를 막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재앙을 부르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자. 산업 혁명을 통해 공업 사회가 이룩되기 전에는 마스크를 썼든가 해수욕장에서 자외선 차단제를 발랐든가. 맑은 공기가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가 이미 경고음을 울리고 있지 않은가.
 
 공기는 어디에나 있고 대가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그 존재를 잊고 산다. 그래서 망각이라는 단어가 탄생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공기는 하나의 공동체다. 벨기에의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에 의하면,“만물을 구성하는 공기는 영구히 존재하면서도 망각을 허용한다”했다. 
 
 나와 하나 된 공기, 너 때문에 빛을 찾아 하늘의 계단을 오르고 있지만 나 때문에 오른다고 착각하는 우리, 얼굴이 없고 심장이 없다고 공기의 고마움을 잊는다면 하늘은 온통 돌이 되지 않을까. 이제 새것이 슬픔이 되어 내게 와서 곁에 있다면, 나는 없고 너만 있는, 새로운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때다.
 
 급격한 도시화로 공기 가열이 가속(쓰레기로 인한 맑은 공기 회복탄력성 상실)되고 있다. 2019년도 평균 수명은 83.3세 KOSIS(동계청, 생명표)이다. 결과적으로 공기 체계를 이대로만 유지한다면 우리가 우리의 숨통을 조이는 경우는 오지 않을 것 같은데, 공기 질이 더 나빠진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사실 기후 재난을 막으려면 원시인의 삶을 사는 게 제일 좋지만 그렇게는 못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덜 편리하게 사는 게 답이다. 뭐라도 시작이 중요한데, 시작에는 행위가 따라야 하므로 발상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조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의 귀결점이기도 하다.
 
 인류의 성장과 함께 발생된 기후 위기는 인류의 성장을 되레 위협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도 기후 위기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학자들에 의하여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온실가스, 대기오염, 자외선 증가 등으로 인한 기후 위기로 지구가 몸살을 앓지 않게 하자.
 
 국내 기후변화를 살펴보자. 4월부터 초여름 날씨를 보여주고 있는 요즘, 한반도는 아열대기후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미 제주도와 부산 목포를 연결하는 남해안은 아열대기후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동해안으로도 그 영역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구온난화와 맞물려 있다.
 
 삶에서 행복보다는 고통이 더 많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우리가 삶을 즐겁게 영위하는 것은 망각의 늪에서 에너지를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울음 뒤에 웃음은, 세상이 자기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므로, 헛웃음을 웃지만 그 헛웃음이 진짜 웃음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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