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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 시흥동161번지(현 경남아파트)-(2)-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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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0.26  11: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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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숨겨진 이중생활은 일 년여 간 지속되었다.
성姓팔이 장사를 눈치 챈 사내아이들은, 유명숙과 어울려 놀 때마다 철부지 특유의 언어로 양갈보라고 놀려댔다. 그러면 유명숙은 동생들의 면면 성향에 맞추어서 굴밤 한 대로 머리를 쥐어박거나, 좀 밉다 싶은 동생에게는 양비대담攘臂大談이라도 되는 양 따귀를 붙이며 욕설놀림을 금지시켰다.
아이들의 급진한 도발 행동은, 급기야 노랫말로 불리게 되었다. 누구의 작사· 작곡인지 지금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노랫말 내용은, 퇴폐성이 농후한 풍자였다. 이하 생략
 
두 딸의 엄마를 원아들은, 처음에는 까치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수많은 전쟁고아들의 여러 종별의 놀이를 어디선가에서 은밀히 지켜본 후 김영자 원장에게 고자질해서 매 맞게 하는 얄미운 원성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잔소리도 꽤나 심했던 만큼이나 간섭도 잦았다.
아이들의 나쁜 버릇들을 꾸짖는 어른의 훈계가 아니라, 누구는 말을 안 들어 먹으니 쫓아내야 한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하고 내내 불편했다.
실제로 명숙엄마의 상부 보고로 한 아이는, 도둑 누명을 쓰고 종아리 열대와 하루를 굶는 벌을 받았고, 선배 한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농부에게 팔려가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었다.
 
미군58부대로 출퇴근하는 한국인 노무자들을 관리하는 상급 일을 보면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의 쓴맛 때문인지, 삼십 대 젊은 나이에 초등생 삼학년인 외아들을 남겨놓고, 꼭두새벽에 갑자기 피토를 쏟아내면서 요절한 남편의 위치에 앉은 김영자 원장이 명숙엄마에게 전적으로 맡긴 일은 쌀 창고지기였다. 쌀 창고는 동향인 붉은 벽돌 강단 뒤편에 있었는데, 두 모녀의 방벽 면과 하나로 맞붙어 있었다. 그 기와지붕 건물 뒤편으로는 돌담 위로 한옥 기와가 길게 얹어진 뒷동산이다.
 
몸집이 드럼통처럼 뚱뚱한 전주아줌마가, 정신연령이 낮으면서 입술 한쪽이 비 정상하게 비뚤어진 데다, 코 막힌 목청의 발음이 부정확한 이정옥 계집에게 양은양동이-고무양동이 두 개를 맡기고 마당우물을 거쳐 좌측은 잔디밭, 우측 가편으로 또 다른 축대와 이어진 7개의 돌계단을 오르자, 해마다 많은 열매를 맺는 감나무 몇 그루가 텃세를 부리며 군림하는 작은 마당에서 시간 맞춰 서성거리며 기다렸던 명숙엄마가 습관성 팔짱을 풀고 앞장을 선다.
손아귀에 꼭 움켜쥔 열쇠꾸러미에서 하나를 골라 몸통이 퉁퉁한, 일명 맹꽁이 자물통 밑구멍에 맞춰 끼면서 좌측으로 비틀었다. 쇳덩이 자물통이 거둬지고 파란페인트 색상의 목재 문이 바깥으로 활짝 열렸다. 
 
하루 두 차례만 열리는 쌀 창고 안은, 바깥 햇살이 들면서 훤하게 드러났다. 공기를 순환하는 창문 하나 없이 꼭 갇혀 배인 매캐한 양곡냄새가 몰씬 맡아졌다. 흰 벽면으로 누여서 차곡차곡 쌓여있는 것은 보리와 쌀가마였다.
또한 강냉이 죽 재료인 옥수수가루 몇 포와 수제비용 밀가루 포대도 따로 보였다. 밀가루포대 한 면에 ‘미국국민이 기증한 것, 팔거나 바꾸지 말 것’라는 큰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한복판 바닥 위로 새끼줄 벗겨 개봉한 두 가마가 각자로 따로 놓여있는데, 보리와 쌀가마였다. 
 
명숙엄마의 혼자 중얼거림을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전주아줌마는, 먼저 그 안의 전용 양은그릇으로 보리를 퍼 고무양동이에 옮겨 담았다. 그다음으로 자세 방향을 돌린 상체를 거의 선체였던 앞전보다 깊이 낮춰 바닥 면 흰 쌀을 떠 양은양동이를 채웠다. 흰 쌀에 비해 보리 양이 7대3으로 많다. 
 
명숙엄마는 때 아닌 한밤중에 쌀 창고 문을 여는 경우가 간혹 있다. 말을 극도로 아끼면서 어디선가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을지 모를 복병의 염탐 눈총에 긴장을 높여 심신을 사리는 의문의 외부인이 찾아오는 날에 한해서이다. 작은 신장의 몸매가 호리호리하게 마른 남자의 눈매는 경계심이 높다.
전쟁에 능한 특수부대 요원처럼 치고 빠지는 동작이 매우 날렵할 뿐 아니라, 일 처리도 깔끔하다. 정체불명의 이방인은 대체로 한 달에 한 번꼴로 찾아왔다. 그 이방인이 오는 날이면 명숙엄마의 좌우 살피는 겹눈 질 거리는 한층 더 예민하게 분주해진다.
 
한밤 때인 어두운 색상과 맞춰 입은 검은 복장의 이방인은, 지켜보고 있던 노파가 손짓해 부르자 감나무 뒤편에서 얼른 뛰쳐나와 곧바로 쌀 창고 문턱을 한 걸음에 넘어 안으로 숨어들었다. 작은 기척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의식고조를 한층 높여 세운 명숙엄마가 출입문을 조용히 닫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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