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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 시흥동 161번지-(3)(현 경남아파트)-송골(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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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08  15: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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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를 확인하려 두세 차례 밝힌 성냥불에 순간 비친 이방인의 안색은 차갑게 창백했다. 
이방인은 성냥불이 남긴 유황 냄새와 곡물 냄새가 뒤섞여서 공기로 떠도는 어둠 안에서 서둘러 밀가루자루 아귀를 최대한 크게 벌렸다. 
자루 안으로 명숙엄마가 퍼 옮기는 쌀과 보리가 뒤섞여서 담아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문 틈새를 통해 바깥으로 불빛이 샐 것을 염려하여 성냥불은 더는 켤 수 없다. 이방인은 칠흑 속에서 자루를 들어 올리며 무게를 가늠한다.   
 
 “아내 동무, 힘이 감당할 수 있을 양이니 그만 합세다.”
  이윽고 침묵을 깬 이방인의 입매 억양은, 가늘면서 굵직했다. 또한 일변하게 단호했다. 
그는 아귀를 바싹 비틀어 움켜쥔 자루를 등에 짊어졌다. 그 사이 명숙엄마는 열어둔 문짝을 잡고 옆으로 물러서 있었다. 
이방인이 먼저 쌀 창고를 나섰다. 뒤를 따른 명숙엄마가 문을 닫고 자물통을 걸어 잠갔다. 
 
 명숙엄마는 짐 무게로 상체를 구부정히 숙인 이방인을 앞질러 닫아두기만 한 담장 쪽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그 바깥으로는 보육원에서 경작하는 호박밭이 있다. 그러므로 평소에는 자물통을 채워둔다. 
출입문 높이는 낮기에 어른은 반드시 머리를 숙여야 한다. 이방인은 북한용 워커 발을 아래로 조심스럽게 내려디뎠다. 
그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이슬기운이 촉촉한-상거가 아득히 먼 하늘 별빛들의 안내를 받으며, 호박밭 샛길을 한달음에 빠져나갔다. 
백산 깊은 숲에서 은신하고 있는 몇몇 동료들을 그리면서―
  
까치아줌마가 기와지붕 식당 앞 상급생 남자아이들의 방을 몰래 침입하는 때는, 아이들 모두가 학교에 간 한낮 무렵이다. 
단체신발장을 벽면으로 붙인 현관에 의해 길이가 짧아진 작은 방과 반벽을 치고 나누어진 큰방에는, 긴 마루방이 하나 더 달려있다. 
소위 비밀 방이라고 불리는 길쭉 모양의 마루방이다. 양방 아이들이 밤마다 덮고 자는 많은 양의 이부자리와 그들의 교과서든 손가방 외에 개인들의 소소한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외의 물건으로는 하꼬짝(나무상자)몇 개가 있다. 
주먹의 힘으로 작게는 한 명, 많게는 네 명까지 소위 마실 물 떠와라-세숫물 준비하라 등의 하방으로 부리는 부하를 둔 몇몇 대장의 소유물이다. 
그 안에는 대장의 일방적 폭력이 두려워 그의 지시에 따르는 부하들이 학교출석을 빼먹고 동네를 누비며 하루 적량으로 받친 구리 따위의 잡다한 고철과,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부수입으로 몰래 챙겨 넣은 시계·반지 따위의 귀금속품들이 함께 들어있는데, 
명숙엄마는 그 상자들을 뒤져 그 물건들을 훔쳐 가곤 하였다.
  
학교에서 막 돌아온 한 대장은, 누군가가 제 상자를 뒤진 흔적을 발견했다. 뚜껑이 반 정도 열려있었던 것이다. 
그는 즉각 쌍심지 켠 핏대를 세우며, 한방 후배들과 옆방 후배들을 상자 앞으로 불러 모아 앉혀놓고 누구의 짓이지 자백하라는 윽박을 질렀다. 
양 무릎을 꿇은 사지를 저마다 바싹 조아린 후배들은, 서로를 눈치거리며 대장의 돌 주먹질이 자신에게 날아들지 않기를 바랐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대장은, 미리 준비해둔 나무곤봉을 집어 들었다. 
체조용구로 쓰이는 둥근 곤봉의 일격은, 일 년 후배이며, 직속 부하인 이헌국의 삭발 정수리에 된통 떨어졌다. 
의심 대상 1호였기에 무작정 가격부터 내린 것이었다. 터진 두피 사이로 붉은 피가 줄줄 흘렀다. 제법 많은 양이었다. 급히 이동한 강당에서 응급치료를 받았다. 
  
나중에 명숙엄마의 소행이었음을 알게 된 대장은 대비를 서둘렀다. 
방과 후에 들른 잡화상에서 제일 먼저 가격을 알아둔 자물쇠 부속물에 맞는 고리 하나와, 그 양편 작은 구멍에 박을 두 개의 못을 사서 자신 외에 아무도 열지 못하도록 완전히 봉쇄했다. 
까치아줌마의 별칭은 그날로 간사한 도둑년이라는 뜻이 담긴 야지로 전격 바뀌었다.
  
두피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숱 적은 머리 뒤편으로 색상이 일부 벗겨진 그 양의 부위만큼 누리끼리 빛깔이 드러나 있는 은비녀를 항시 꽂고 다니는 야지아줌마는, 주변을 이리저리 염탐 하는 눈치를 습관처럼 굴렸다. 늘 무언가의 물증을 잡아채려는 분주한 눈매는 생선이나 튀는 쥐를 노리는 고양이의 야광 눈빛과도 닮았다. 
  
원아들은 둘러앉아 누구한테서 듣기만 한 망우리 공동묘지 도깨비불 이야기를 멋대로 상상으로 지어냈거나 살을 붙이며 나누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한밤중에 무덤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요물은, 긴 머리카락 풀어헤친 처녀 귀신이다-소름 돋게 하는 말이 이야기꾼 입에서 내뱉어지자, 하얗게 죽은 백짓장 얼굴의 괴성을 지르며 그만하라고 머리부터 이불을 뒤집어썼다. 
공포의 소름에 운동장을 가로질러야 하는 저 먼 변소 가는 일은 엄두가 나질 않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촉수 낮은 붉은 전등 하나 만이 출입구 위편에 매달려있을 뿐인 변소환경은 캄캄한 어둠에 둘러싸여 있다. 용변을 보다 떠다닐 도깨비불에 분명 잡아먹히겠다는 겁을 집어먹은 것이었다. 
  
그중 한 아이가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오줌을 싸고 오겠다며 방을 나갔다. 그렇지만 그 아이는 변소에 가다 말고 혼비백산 채로 헐레벌떡 되돌아왔다. 
바지에 오줌을 지린 채로 동료들 속으로 급히 파고들었다. 놀란 가슴을 어느 정도 가라앉힌 아이가 뒤집어썼던 이불을 거두고 작은 얼굴을 내밀었다.
 
 “흰옷을 입은 작은 사람이 등나무 뒤편에서 불쑥 나타났어. 거 왜 전에 우리 모두 열 꼬리 달린 여우이야기 들은 적 있었잖아. 
꼭 그 여우와 똑같아 어찌나 놀랬는지 바지에 오줌을 쌌지 뭐야.”
 
  어린 원아들을 유혹하여 인민군 훈련받을 미지의 장소로 소개한다는 명숙엄마의 말은 간접적으로 듣기 들었다. 
그러나 우물 안 개구리도 우물 안 분수를 지키듯이, 평범한 거죽 일상의 겉보기와는 딴판 하게 워낙에 조심스러운 정탐꾼 요물이라 결정적 물증을 잡지는 못하였다. 
 
 명숙엄마가 외곽에서 아이들의 동정을 눈여겨보는 의무를 수행했다면, 원아들의 옷을 갈아입히며 위생 상태를 점검했던 김귀옥은, 아이들과 호흡을 직접 교환했던 보모였다. 
신장이 왜소하게 작으면서, 잘록한 허리에 늘 착용하고 있는 살죽경(안경)안색 빛이 대체로 어두운 그녀는, 생각이 많은 고독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말수가 적은 가운데, 지적인 면이 정도껏 서려 있었다. 그 힘의 작용 때문인지 내면 깊이로 항상 무언가를 숨겨둔 인상을 풍겼다. 
한옥 안방 툇마루에 길게 엎드려 내리쬐는 햇볕 아래에서 학교숙제를 하고 있는 한 남자아이에게 “눈 나빠진다.”라는 주의를 환기했었다는 그녀는, 명숙엄마와의 얘기 시에는 보육원 내부 일이 아닌 북한공산당의 극비정보를 알려주는 지령형식이었다. 
말하자면 명숙엄마는 김귀옥을 통해 북한공산주의 간첩 노릇을 한 것이다. 
  
김귀옥은 혼자 방 한 칸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제 방에서 이불을 푹 뒤집어쓴 채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둔 북한방송을 듣곤 했다. 어느 한 날 밤. 사복 차림의 여러 명이 보육원을 급습했다. 
그리고는 불빛 없는 어두운 방 안에서 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북한의 선전방송을 함께 듣고 있는 두 여자를 긴급히 체포해 머리채를 잡고 어디론 지로 끌고 갔다. 그들은 통금시간 이용이 언제든 가능한 군 정보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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