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에서 한 여류 소설가가 쓴 칼럼을 읽게 되었다. 지하철에서 환승을 위해 가고 있는 중 어떤 할머니가 길을 물었고, 그에 대한 자신의 응대해 대한 이야기였다. 

그냥 스쳐 지나칠법한 이야기가 며칠을 두고 머리에 남아 불편한 상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나 역시 할머니이고, 젊었을 때와 달리 누군가에게 무엇을 물어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로 주저하지 않아 왔던 터일 것이다.

 

 그 글 쓴 이는 할머니가 자기를 향해 다가옴을 눈치채고 그를 피하기 위해 걸음을 빨리 옮겼는데, 그런 경우 늘 불쾌했던 기억이 있어서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 할머니는 자기 뒤통수에 대고 거두절미(去頭截尾) “oo역 어떻게 가죠?”라고 물었고, 자기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나도 몰라요!”라고 하고는 걸음을 재촉하는데, 뒤에서 “쳇”하는 소리가 들려 왔단다. 

그 할머니가 자기를 향해 내뱉은 소리임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여겨져, 역시 냉정하게 말을 끊어버리길 잘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나요’도 아니고 ‘가요’도 아닌 ‘가죠’라고 말한 것에 대해 ‘말의 무게’를 운운하며 불쾌한 이유를 덧붙여 설명하고 있었다. 

내 부족한 지식으로는 ‘가나요’와 ‘가요’와 ‘가죠’의 미묘한 무게의 차이를 도저히 알 수 없어 논외(論外)로 칠 수밖에 없지만, 복잡한 지하철 환승역에서 길을 잃고 어마지두 서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안쓰럽기만 했다.

 

반면, 질문을 받은 쪽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마침 분초(分秒)를 다투는 바쁜 일로 가는 중일 수도 있고, 대부분의 노인들이 나이를 앞세워 하대(下待)하여 말하는 등 무례하게 하는 행동을 속절없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많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잖아도 그 글쓴이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말귀도 어둡고, 동서남북 길도 잘 분간 못하는 할머니에게, 그것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전철 환승역에서 알아듣도록 길을 잘 설명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고 시간도 많이 걸릴 건 뻔하다. 

하지만 이 할머니가 좀더 공손하게, 허리까지 굽혀 인사하며 ‘바쁘실텐데 아주 미안하지만...’ 하고 말머리를 시작했으면 상황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곧장 ‘쳇’ 하고 불편한 심사를 노출했다는 것을 보면 애당초 그런 전제가 당치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안됐지만 ‘옳은 대접’ 받을 만한 할머니가 아니란 생각마저 어쩔 수 없이 들었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언행(言行)이 참 많이 조심스럽다. 노인의 입장에서 생각을 무심코 말했다간 ‘꼰대’란 소리 듣기 십상이고, 은행의 자동출납기며 휴대폰 등 신문물(新文物)의 사용이 익숙지 않아 ‘디지털 문맹(文盲)’이란 수모(受侮)를 겪으며 젊은이의 눈치 살피기가 일상이다. 

노구(老軀)가 자유스럽지 않아 행동이 굼뜨니 어느 모임이든 어느 자리에서든 폐스런 존재일까봐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다만 나이가 많을 뿐으로 어른 대접을 받고 존경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 그런 생각을 가졌다간 퇴출 1호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노인들이 처음 보는 젊은 사람에게 해라를 하고 반말을 쓰며 함부로 대하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보는데, 젊은 사람 입장에서 매우 기분 나쁘고 불쾌할 듯하다. 우리말에는 경어(敬語)와 비어(鄙語)가 엄연히 존재한다. 

나이가 어려 보인다고, 젊은 사람이라고, 구면(舊面)이건 초면(初面)이건 가리지 않고 말부터 놓아 하대하는 것은 아주 시대착오적인 무례한 습관이니 고쳐야 할 것이다. 

노인이 먼저 존경받을 처신을 해야 존경이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우리말은 참 오묘해서 어미(語尾)가 ‘...니다’ 또는 ‘...습니다’로 끝나는 것과 ‘...요’ 혹은 ‘...해요’로 끝나는 것은 그야말로 말의 무게가 다르다. 앞서 언급한 소설가는 ‘가나요’와 ‘가요’와 ‘가죠’의 미묘한 무게의 차이를 말하며 불쾌한 내색을 했지만, 나는 도움을 준 젊은이에게서 “감사해요” 혹은 “고마워요” 라는 인사를 들었을 때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낀다. ‘...요’ 또는 ‘...해요’란 말은 반말로, 아랫사람이나 같은 또래에게 하는 인사말이지 웃어른에게 하는 말은 아닌 것이다. 

이런 경우 당연히 ‘감사합니다’ 혹은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잘못된 어법(語法)의 예라서 한 마디 덧댔다.

 

이래저래 바르게 말한다는 게 참 어렵게 여겨진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겸손하고 공손하게 그리고 바르게 말을 건넨다면 아무리 귀찮고 시간이 걸릴지라도 언제고 옳은 길 안내를 받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