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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이웃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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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2.17  22: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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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실행하는 국어맞춤법 공부지도를 마치고 귀가한 집 앞. 머릿속에 저장해 둔 비번을 되풀이 눌러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왜 이럴까? 처음으로 겪는 일이라 졸지에 난감에 빠져든다. 한 건물 내에 살면서도 대면 횟수가 뜸하여, 인상착의 설명이 가물가물한 집주인에게 모처럼 전화를 걸었다. 
그편도 바깥에서 문 여는 방법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단, 건전지 수명이 다 된 때문이지 않겠느냐면서 누구로부터 얼핏 들은 다른 건전지를 이용하면 된다는 힌트를 살짝 들려준다. 그 모양 설명이 없어 그림이 잡히지 않는다.
 
사실, 언제부터 디지털 도어록 번호판 불빛이 깜박깜박 흐렸었다. 
이 때문에 상위 뚜껑을 젖히고 번호를 누른 후 닫는 즉시 캄캄하게 꺼지곤 하는 현상을 그때마다 목도해야만 하였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평소에 듣지 못한, 특정한 삐삐 음을 그 무렵부터 듣게 된 그 소리가 건전지 교체를 알리는 신호음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기도 하였다. 
당장 편의점에 달려가 4개 묶음의 건전지를 사왔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야 건전지를 교체할 수 있는 게 아니던가.
 
방법을 찾다 사다리나 차량 지붕을 이용해 이층 창문을 열자는 방법론에 다다랐다. 그렇지만 해 저문 초 밤 시각이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인사가 없어 알지 못하는 이웃주민 누군가에 사다리 빌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집수리를 주업으로 하는 뒤편, 블로크담장이 낮은 붉은 벽돌집 외부계단 이층옥상에 자잘한 건축자재들 위로 누여져 있는 사다리가 있긴 하다. 
가벼운 알루미늄 사다리 아닌, 다목적 8단 A형 접이식사다리이다. 육체 힘을 써본지 오래고, 또한 나이 많은 체력으로 굉장할 저 무게 과연 들어 옮길 자신이 있기는 한 걸까? 생각을 이리저리 굴리다 결국 제쳐둔다.
 
나쁜 기운의 귀신을 물리치고, 풍요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대추나무 한 그루가 물체로는 창가와 가장 가깝다. 그렇지만 바람이 부는 날마다 창밖을 두드리는 그 가지는 너무 가늘어 디딤 용도로 쓸 수가 없다. 
집주인과 비슷한 해답을 들려줬던 한 동네 주민이자, 초등학교 동창인 전 건축업자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넣는다. 친구는 차량은 빌려줄 순 있으나, 집에 있는 4미터 길이의 사다리는 어떻게든 가져갈 수 없다는 대답을 귀전으로 밀어 넣었다.
 
다른 방법을 찾다, 집주인 측에서 어제 이어 이틀 연속 긁어모은 낙엽과, 지난봄에 치기를 해둔 그 마른 나뭇가지들을 태운-감나무·대추나무 등이 식재된 화단 내 연통 달린 드럼통을 반 기운 채로 이 미터 남짓 굴려 대추나무 밑에 갖다 놓고, 그 위에다 뒤엎은 반쪽짜리 고무 통을 더 얹는다. 드럼통 안에는 아직 잔불이 남아있다. 
그렇지만 불안정한 기웃기웃 위에서 생김새 둥근 금속 난간 하부는 만세 팔로 붙들 수는 있었으나, 그걸 타오르는 체조의 재주가 없어 앞으로 나가는 진행이 일체 막힌다. 
상체를 일자모양으로 옆으로 누여야 그나마 오른발 먼저 난간 사이에 걸 수 있을 터인데, 그게 안 되어 애를 먹는다. 
누가 아래에서 엉덩이를 밀어준다거나, 하체를 안정시킬 턱받이물체가 있다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위태에서 벗어날 수는 있겠다. 그 용에 결국 힘이 부쳐 도리 없이 철수 결정을 내리고 흙바닥을 밟는다.
 
고개만 쳐들면 한눈에 볼 수 있는 통유리 집. 문이 열리지 않아 들어갈 수 없다? 생각을 돌려 이번엔 주차장 내 가스관을 탈 방법을 고안해 낸다. 
그렇지만 이 시도 역시도 만만하게 볼 여간내기가 아니다. 직각으로 꺾여서 가구 별로 서로 이어진 가스관을 안전판으로 잡고, 이층 높이까지 오른 벽을 타보니, 발 디딜 턱 확보는 물론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어떤 장치도 하나 없는 민 벽면뿐이다. 
그 귀퉁이를 어떻게든 돈다할지라도 왼발 끝이 창가까지 닿으려면 한번쯤은 자세를 고쳐 잡아야 할 터인데, 그 기반이 될 어떤 틈새도 없어 난처함에 직면한다. 
그 과정에서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고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는 허공이다. 결국 포기하고 원점으로 되돌린다. 드럼통을 옮길 시부터 매만진 손만 더께로 더러워졌을 뿐이다.
 
이웃주민 누군가를 기다린다. 승합차 한 대가 1층 주차장에 댈 수 없자, 건물 바깥 소공원 입구 도로면에 세워진다. 운전석에서 내려 차문을 잠근 사람은, 처음 보는 중년의 장발남성이다. 그가 어느 방향으로 발길을 잡는 지를 눈여김으로 쫓는다. 주차장을 지나 현관 안 첫 계단을 막 오르는 그에게 다짜고짜 도움을 요청한다. 그는 단번에 거절의사를 밝힌다. 
사람이 차량지붕에서 뛰듯이 움직인다면 아무래도 흠집을 넘어, 찌그러질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일 것이다. 당연한 일반적 상식이다.
 
맨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여러 궁리도 소용없다. 서성거리는 시간이 마냥 길어진다. 야간추위가 점차 으스스 강해진다. 눈앞에 둔 집 오늘 중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이 밤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는 친구네 서예학원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리라는 생각을 미리 떠올린다. 그럴 리는 절대 없겠으나 만일, 친구 편에서 부담이 된다 싶은 눈치를 흘릴 시 여관으로 방향을 돌리겠다는 점도 고려 대상에 담아둔다.
 
큰 검은색 레저용 차량(RV)이 주차장에 세워졌다. 운전석에서 내린 차주 역시도 처음 보는 중년남성이다. 매일 내 집 앞 계단참을 지나다닌다 할지라도, 마주칠 기회가 전무 하여 사실상 알지 못하는 그와 처음으로 의례적 고개인사를 가볍게 나눈다. 
나보다 훨씬 젊은 그와 계단을 함께 오르다, 내편에서 뒤따르는 그에게 문 여는 방법을 대뜸 묻는다.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는 그가 몇 마디 설명을 들려준다. 
나는, 주인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뜻을 남겼다 싶은 주민이, 등을 돌려 3층 계단을 막 밟기 시작한 때와 맞춰, 문 잡이에 걸어둔 상의양복을 셔츠 위로 걸쳐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귀띔대로 직사각형 건전지를 살 목적을 앞세우고 주차장을 막 빠져나오자 뒤에서 누군가가 부른다. 
그 이웃주민이다. 집문 앞에 선 두 사람. 이웃주민은, 때마침 집에 있어 휴대한 직사각형 9V 건전지로 상단 돌추부 양 쪽을 꼭 맞춰 끼운다. 
희미하게 어두웠던 번호판에 파란불이 밝게 켜졌다 이내 꺼진다. 한번 실패다. 똑같은 시도 두 번째에서 네 자리 번호를 차례로 누르자, 잠금이 해제된 소리가 안에서부터 들려온다. 그는 손수 내부 건전지까지 갈아줬다. 얼마나 고마운 지, 나는 그 감사표시로 나의 장편소설 "삶의 숨결"을 선물로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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