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골 김성호

 아담이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가 건넨 선악과를 먹고 신으로부터 심판받은 영벌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 수명이 제한되는 땅을 일구어야 식물을 얻을 수 있다는 시작의 알림이었다. 한마디로 고생의 진땀을 흘리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없다는 영영 형벌이었다. 성경의 유래로 인간은 저마다 일을 해야만 목숨부지가 가능해졌다. 그 발달은 오늘날에 직업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였으며, 자신의 형편과 정서에 맞는 직업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6,25전쟁 폐허로 나라마저도 지독하게 가난했던 50-60년 시대에는 부모의 후광을 업은 특수 자녀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선택은 거의 불가능했다. 당장의 호구지책으로 수확을 마치고 된서리에 바싹 마른 배춧잎이라도 거두려고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어야만 했었다. 끼니 어려운 방법을 손쉬운 도둑질로 해결하려는 약삭빠른 사람들이 범람했던 와중에도 삶의 의미를 크게 봤던 정직한 사람들은 대식구들의 굶주림만은 면제시키려 이를 악물고 손 지문이 닳도록 수고의 땀을 아낌없이 온몸으로 쏟아냈다.
 60년대 후반, 그 당시 40대 가장으로 추정되는 어르신은 농경마을 구석구석 다니며 수집한 한 리어카 분량의 고물을 싣고 한옥(지금의 시흥동경남아파트)정문에 다다랐다. 코흘리개 빡빡머리 아이와 시선을 마주한 어르신은 별 말없이 리어카를 이끌었다. 오르기가 가장 힘든 지점은 경사 높은 시흥고개와 두 미군부대를 좌편에 둔 말뫼고개였다. 고비를 겨우 넘긴 어르신은 허리춤 수건으로 이마 땀을 훔치고 무거운 긴 한숨을 내쉬며 이차선 도로변 한 가게에 들어섰다. 반겨 맞은 아낙네가 즉시 바깥에 비치한 쇠솥뚜껑을 활짝 열어 김이 모락모락 피는 팥 찐빵 몇 개를 접시에 담아 손님들 앞에 내놓았다. 음식물은 시장기 회복의 원기이다. 어르신이 당도한 곳은 영등포 한 고물상이었다. 무게를 저울에 달아본 후 각종 고철더미를 넘기고 계산 마친 그 값을 받은 어르신은 이삭그림이 새겨진 동전50원을 떼어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돈을 벌었다는 기쁨을 해죽 웃음으로 나타냈다.
 어떤 사람은 한번 발을 들인 직업을 천직으로 삼는다. 종교성직자, 예술가, 교수, 의사 등등 인문 성 짙은 인물들이 대체로 제 자리지킴이 길다. 사명에 가까운 외길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의 성향을 굳게 하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속에는 아직도 그릇된 편견이 팽팽하게 살아 있다. 직업은 그 사람의 배경이다. 아비가 존경받는 지위에 있다면 그 자녀들에게도 칭찬의 영향이 내려진다.
 안창호 선생은 일찍이 젊은이들에게 전문지식을 강조했다. 사람의 비실비실 행실을 일깨우며 위상을 높여주는 환경은 전문성을 키우는 일이다. 일반인은 전문가를 이길 수 없다. 장인정신은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몸담아 정상에 선 사람의 명예이다. 사람에게는 직업의 눈이 있다. 그 눈은 연관의 목도를 예사로 넘어가지 않고 절호의 찬스로 잡아챈다. 시인은 사물이면에 숨겨진 생명을 읽어내는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 종교성직자는 온갖 사물을 설교(법문)에 적용하여 메마른 영혼들을 단비로 촉촉이 적셔준다. 사회는 매일의 땀 흘리는 일로써 이웃들과 관계를 맺어나간다.
 생활형편이 어려운 가난은 금전소득 해택이 적거나 전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저마다 인생의 희망을 안고 있다. 그 꿈은 금전소득이 보장되는 일에서 날개를 펼 수 있다. 당면의 빈 지갑을 채우려는 시간제 일을 하던, 안목을 내다보며 자격증대비 공부를 하던 높은 창공을 훨훨 나는 기회를 잡는 건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시인은 3개월 시한으로 바리스타 실습교육을 받고 있다. 소득기반을 마련하여 보다 심정이 안정된 속에서 독자들이 읽기 편한 좋은 작품을 쓰겠다는 각오로 일주일에 격일 3일 3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사람의 목숨은 단 한번뿐이다. 그러므로 그 한 생명은 만물보다 귀하다. 직업인의 불멸의 양심은 자신보다 생활수준이 낮은 이웃들을 돌아보는 것이다. 관심은 상대방 존중이다. 생명은 생명을 낳는다. 생명은 살아있는 언어를 내며 생명과 소통한다. 생명에는 성장은 필수이다. 다 자란 신체는 그 높이에서 아래를 굽어본다. 생명에는 호흡을 내 쉬는 운동력이 있다. 운동은 건강을 상징한다. 그 구슬땀은 싱그럽기 짝이 없어 혼령을 호쾌하게 깨운다.
 나의 생명이 소중하듯이 남의 생명도 소중하다. 하지만 물질탐욕에 눈이 먼 사람은 타인 목숨쯤은 하잖게 여긴다. 세월호 사고는 인명경시에서 비롯되었다. 나만 살겠다는 타인생명 무시의 이기심이 부른 대참사였다. 현장사고의 직접적 당사자들은 나빴던 일진에 걸려 억울할 수 있다. 그들의 재판이 시작된 가운데 그림자 주인공은 28일째 오리무중이다. 그는 이웃 사랑을 외쳤던 목사사업가였다. 하지만 그 목청은 메아리에 불과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가장의 종교를 이용하여 부귀영화만을 꿈꾸었다는 복심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종교탄압을 내세워 밀항까지 타진했었단다. 위세를 더 바라는 노욕의 집착의 수작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의 성향은 위기에 몰렸을 때 가장 잘 나타난다. 그는 국가관도 종교관도 없는 졸부였다. 단지 신수 좋았을 때 떠버린 애국자, 종교지도자이었을 뿐이다. 방주사업도 인류에 선한 혜택으로 돌리기보다 자신의 안일을 위하여 일만 악의 뿌리인 돈만을 좇았다. 그의 해명 없는 도피로 혐의는 더욱더 짙어졌다. 그의 죄목은 날로 무거워져만 간다. 구원파 신자 한 명이 말했다는 푸념이 그의 귀에도 들어갔으며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 양들 뒤에 숨는 건 참된 목자가 아니다.” 장수는 부하를 살리려 기꺼이 제 목숨을 바친다.
 세월호 여파가 이 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 속에서 오랜 훈련과 개인연습으로 둥근 공 다루는 기량을 고도로 쌓은 32개국 최고의 선수들이 브라질에 모여 지구촌을 펄펄 달구고 있다. 그들은 수많은 경기로 감각을 키워 전문 성 갖춘 숱한 눈들의 검증을 거쳤을 것이다. 지구축제의 열광이 최고조에 달할 그날에 금빛 찬란한 월드컵을 들어 올릴 승리를 향해 장딴지 굵은 발만의 기술을 펼치는 그들의 한 경기 한 경기를 시청하면서 느끼는 감동은 투철한 직업정신이 아니면 영광의 정상에 설 수 없다는 설득이다.
 푸른 색 운동장을 뛰고 또 뛰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힘찬 생명력이 감지된다. 피부색이나 인종은 제각기 달라도 한 목표에 뜻을 둔 그들에게서는 건강한 맥박소리가 들린다.
 축구는 골로써 상대방을 제압한다. 우리 국민은 강하다. 그러기에 국민적 염원은 이제는 세계 정상들과 어깨를 겨루는 매번의 참여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으니 16강을 넘어 국가적 사기를 높여달라는 호소로 가슴의 붉은 불을 태우고 있다. 공격수가 힘차게 찬 볼이 쭉쭉 날아 상대방 골문을 뚫는 기적을 보여 달라는 흥분에 한껏 부풀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