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 숙    

학창시절,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이론을 배울 때는 그저 막연히 기계적으로 외며 사회의 경제 흐름에 그런 게 있나보다 했다. 이 후 헤지펀드니 작전세력이니 하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공룡 같은 악화(惡貨)가 선한 투자자들을 울리면서 부당하게 자신들의 부(富)만을 축적하여 사회 경제에 해악을 끼친다며, 학교 다닐 때 배운 ‘그레샴의 법칙’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그레샴의 법칙’은 하필 경제에만 국한된 이론이 아님을 아둔하게도 한참 뒤늦은 이즈음에야 깨달으면서 16세기 영국의 금융가 그레샴에게 감탄과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지난 8월 초 이십여일 만에 찾은 시골집 대문을 들어섰을 때 나는 너무 놀라고 실망이 되어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꽃밭이며 마당 귀퉁이 텃밭이 온통 잡풀로 뒤덮이어 본래 무엇이 심기어 있던 자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긋하게 자란 잔디 사이사이에도 삐죽삐죽, 그리고 여러 그루 과목(果木) 밑에도 풀은 걷잡을 수 없이 무릎 높이만큼 수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 번 다녀올 때 풀을 모두 매고 왔던 터라 실망이 더 컸다. 그 사이 비가 몇 번 왔고 한여름 풀이 한참 성할 때니 짐작이 될 법도 했건만, ‘나쁜 식물’이 ‘좋은 식물’을 모두 점령해버린 눈앞의 어이없는 광경에 하릴없이 ‘그레샴’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다섯 명이나 사서 풀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런데 풀이 너무 많고 억세어 우선 예초기로 어지간히 풀을 베어 낸 뒤 호미로 뿌리를 캐어 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예초기가 지나간 자리를 보니, 그 예리한 회전 칼날 밑에 잘려 나간 건 풀 뿐이 아니었다. 애써 심어 가꾼 부추며 파 등 몇 가지 푸성귀와 한창 꽃이 필 옥잠화 등 여러 꽃나무며 아직 어린 블루베리나무 등이 모두 무참스레 형체를 잃어 눈에 띄지 않았다. 무자비한 ‘작전세력’이 옥석(玉石)을 구분 않고 세력을 과시하는 바람에 몰참을 당한 것이다. 이 때 증권가의 선량한 소액 투자자들을 떠올린 건 엉뚱한 내 비약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날이면 날마다 주변국들의 위협과 나라 안 나쁜 사람들의 이야기로 영일(寧日)이 없다. 미움과 갈등과 불신과 분노가 먹구름처럼 온 나라를 뒤덮어 미세 먼지가 잔뜩 끼었을 때처럼 숨이 턱턱 막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침이 고요하고 하늘이 맑은 동방예의지국이었는데, 비록 가난할지언정 이웃을 사촌이라 부르고 이해득실을 떠나 도움을 주고받으며 정겹게 살던 우리네였는데, 단군 이래 가장 풍요를 누린다는 이즈음 불평과 저주가 나 남과 위 아래를 가리지 않고 용암처럼 들끓고 있다. 이 같은 죽음의 바이러스가 온 나라에 번져 선한 생명들이 무고하게 앗길까봐 두렵다. 절대로 우리나라 우리 인간사(人間事)에만은 ‘그레샴의 법칙’이 적용되어서는 안 되겠다.
 올챙이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린다지만, 아주 조금씩이지만 끊임없이 솟는 샘물은 흐린 웅덩이 물을 결국은 맑게 뒤바꾸어 놓는다. 비록 프란체스코 교황 같은 큰 인물이 아닌 평범한 소시민일지라도, 있는 자리 그 위치에서 좀 억울하고 손해가 될지언정 상대방을 인정하는 긍정적인 말과 착한 행동으로 아주 미미하지만 본이 되는 삶을 산다면, 주변의 공기가 조금씩 맑아지며 차츰 예전에 우리에게 있었던 자랑스러운 인간관계와 성품 등의 덕목을 되찾지 않을까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이만 분노의 몸짓과 불신의 말을 접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끌어 모아 멋지게 양화(良貨)가 악화(惡貨)를 척결해 내는 이변(異變)을 일으켰으면 좋겠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草家) 삼간을 다 태울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