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괜찮아 그런가? 아니면 햇살 맑은 푸른하늘이 보내는 아침 신념의 축복인가? 차량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변을 따라 걸으면서 바라보는 녹색 짙은 산의 풍경이 싱그럽게 다가온다. 소년시절 입새 마른 누런 싸리나무 줄기를 맨손으로 꺾다 쇄기벌레에 쐬여 겨드랑이 통증을 겪게 했었던 향수 배인 바로 그 산이다. 왁자지껄 신나게 떠들며 함께 동행했던 동료 수에 비해 양이 소량이었다고 기억되는 싸리나무 가지는 며칠을 말린 후 칡넝쿨에 중심 부위가 결박되어 겨우 내내 마당 쓰는 비로 쓰여졌다.
 저 산도 도심의 인간들과 더불어 여름 내내 잦았던 비와 폭염에 시달렸을 것이다. 어떤 때는 목이 말랐었고, 어떤 때는 세찬 바람에 주체할 수 없도록 몸체가 격렬하게 흔들리기도 했었을 것이다. 그 모진 환경적 핍박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지상의 사물들에게서 내 안의 힘으로 새삼 경외 어린 생명의 동기를 부여 받는다.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있다. 뿌리 내린 터를 사수하려고 영역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영역을 넘보는 적에 좇기면 생존권 전체를 잃는 것이나 진배없으므로 사력을 다하여 자신을 보호해 낸다. 인간도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생존의 사투이다. 이 과정에서 아픔에 따른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과도한 욕심을 부렸다 이보다 더 큰 재물의 손실을 입는 쓰라린 고충을 겪기도 한다. 인생살이에서 가장 낮은 굴곡은 실패가 아니라 힘에 부치다며 자신을 놓아버리는 포기이다. 한숨을 많이 내 쉬는 사람은 정신적 건강이 약해졌다는 기미이다. 이런 사람은 편히 눕기만 하려기에 구제가 막막하다. 이런 사람은 삶의 절도를 잃었기에 극단적 선택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무한한 상상력을 가진 자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미래에 띄운다. 꿈은 그 정상에 서기까지 정신력을 시련으로 단련시킨다. 사방이 꽉 막힌 어두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사람은 이상형을 품은 자이다. 그는 그 꿈을 추구하다 넘어졌다면 '내 사전에 포기는 없다' 하며 곧 다시 일어난다.
 자연은 누구를 가르치는 언어가 딱히 없다. 그럼에도 우리 인생들에게는 부동의 대스승으로 남아 있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보편적 은혜를 베푼다. 실언으로 내뱉은 비밀을 굳게 지켜주는 침묵이 강한 한편으로 조소도 갈등도 부츠기지 않는 가운데, 원수를 갚겠다는 원한의 복수심을 불태우지도 않는다. 자연의 안식을 중요시하는 각자 개인이 드러난 뿌리를 흙으로 덮어만 준다면 언제까지나 우리의 심신을 위로하는 친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자연 속에는 은은한 신비가 있다. 그 성질이 부드러워 수양 정진에도 유익하다. 산 사람들의 성품이 대체로 유순한 까닭도 그 환경적 영향 때문이다.
 삶이 녹록치 않다는 퇴폐에 빠진 사회를 등지고 한적한 산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단다. 오랜 기간 그 기질로 살았던 나는 일대 변신을 꿈꾸고 생계기반을 다지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느 날처럼 오전 아홉 시 전이다. 오늘로써 팔월 한 달, 총 이십일 간 받았던 인테리어필름 직업훈련 마지막날이다. '연습이 대가를 만든다.' 독일 속담이다. 하지만 나의 실력은 밥벌이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한참 어쭙잖다. 글 쓰는 일 외에 지금까지 변변한 직업을 가져보지 못한 나는 총 200 시간을 바친 도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기를 다진다.
 내 고장 시흥동에 소재해 있는 '예가직업전문기술학원'에서는 필름 외에 내장목수, 도배, 미장 등등의 교육을 가르친다. 실력 차이를 드러낸 수강생들을 한시적으로 겪어본 결과 사기는 출중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오기가 대단했다. 나 역시도 그들과 일반이었다. 하지만 나는 직업이 목적이 아니다. 필름 일로 일정한 재정을 마련하여 장차 문학교실을 열겠다는 계획을 안고 있다. 마침 그 꿈을 펼칠 기회를 확보해 두었다. 금천문인협회 명의로 사무실 하나를 활당 받은 게 그 기쁨이다. 비록 몇몇 주민단체들과 함께 사용하는 비좁은 공간이면서 이용 시간이 제한적이긴 하나, 그 소중은 없는 것보다 낫다는 서러움을 덜어 주기에 충분했다. 그 장소는 옛 독산파출소 이층건물이다.
 그동안 연령 층 폭이 한 세대 정도로 넓은 이십여 명의 훈련생들을 지도하며 호흡을 함께 나눈 강사는 김종순부장이다. 숱 적은 머리 앞부분에 침 바늘 하나를 꽂고 침을 꽂은 동기를 구술로 밝히며, 흰 바탕 칠판에 자신의 군번을 적고 군복무 이야기로 넘어가는 부장의 작달막한 체구는 강건하다. 그의 작별의 인삿말은 사업주라면 현장의 하루 근무시간을 넘겼으면, 그 시간 이후부터 새로운 비용을 책정하되 절대로 미불책으로 같이 고생한 사람의 속을 태우는 장난을 치지 말라는 요점이었다. 이어 단상에 선 김철수원장은 견적 방법과 가격 책정 요령 등등에 대해 강연했다. 현장 경험에서 취득한 풍부한 지식으로 사진을 곁들인 교재를 엮어 첫 만남이 시작된 수강생들에 배포한 원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많은 실전을 강조했다.
 그 이틀 후 나는 현장경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