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골 김성호 우리말 연구소장

    장편소설(방황하는 영혼들)교정을 마치고 6곳 출판사로 한꺼번에 전송했다. 오 년 전에 써 뒀던 원고인데, 최후의 작품으로 남기자는, 금년을 넘기지 말자는 각오 하에 약 오 개월을 거쳐 대장정을 마쳤다. 이 작업을 마치면서 이런 글을 남겼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양띠 해가 기다리는 새해/ 과거를 잊겠다/ 새 희망을 품겠다 다짐보다/주어진 이 하루/감사의 기도로 시작하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끈질긴 인내를 요했던 이 작업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힘들게 외로웠다. 그 과정 중에 문학교실 준비에 박차를 가했고, 작년10월(셋째 주 금요일, 월례행사)부터 시 낭송회(시와 음악이 마음을 데우는 저녁)를 개최할 수 있었다. 비록 작은 출발이었지만, 자작 글이든 애송 글이든 출현으로 자리를 빛내준 참석자들의 격려는 크나큰 원동력이 되었다. 어느 행사장이든 관중의 힘은 주최 측에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 발품을 더욱 팔아야겠지만, 필자는 낭송인 양성, 시 창작반 등의 정기행사 기반으로 문학의 향기를 널리 흩뿌릴 것이다. 덧붙여 주최 측 명의는 우리말을 심도 있게 다루는 '우리말 연구소'로 정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등하다. 그 시간은 한 번 지나치며 되돌릴 수 없다. 오늘의 유아를 다독이며 어른으로 자라게 할 뿐이다. 인간에게 앞만 보게 하는 두 눈만이 있는 까닭은 지나온 과거는 되돌아보지 말라는 뜻 때문이다. 성경 창세기에 롯 인물이 등장한다. 어느 날 그에게 천사가 소돔과 고모라 성 멸망을 예고하며 탈출 시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그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 본 즉시 소금 기둥으로 변해버렸다.

  해맞이 관광이 시작되었다. 그 많은 사람들은 종교심을 떠나 힘차게 떠오르는 첫 태양을 바라보며 마음의 소원을 빌 것이다. 누구는 건강, 누구는 가정평화, 사업번창을 기원할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소망을 비는 사람들은 단 한번 뿐인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생명이 뛰는 맥박이 아니고서는 그토록 존중에 모든 것을 걸 수 없는 노릇이다. 필자는 '해는 해이고, 달은 달이다'라고만 이해하고 있기에 자연계를 향한 기도는 딱히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겸허해지기는 한다.

  기도는 궁극적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애향심에 닿는다. 이 속에는 축복의 단어가 아로 새겨져 있다. 우리의 전통적 오복을 넘어 현 세대에 더해지는 축복은 귀신도 춤추게 하는 경제 안정이다. 물질은 소비성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소득이 절대 중요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현실은 대학 문을 나서자마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젊은이들의 수가 기하급수로 늘고 있는 처지이다.

  이상은 현재의 위치에서 목표물을 볼 수 없거나 저 멀어 도무지 닿지 않는 불가능 의미를 말한다. 오래 전부터 꿈이었던 문학교실을 준비하면서 특히 경제난 문제로 하느냐 거두느냐 기복을 수도 없이 치뤘다. 이 난제에 빠져들었던 주된 이유는 가만히 앉아서 이 걱정 저 걱정을 상상으로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염려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럼에도 하나하나 헤쳐 나가면서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있는 것은 숨겨져 안 보였던 새로운 필요의 발견이다. 낙과(落果)만을 기다렸다가는 주어진 기회마저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날로 지갑이 엷어지는 걱정을 안고 맨발로 이리저리 뛰었다. 하지만 대학에서도 인문학과를 폐강하거나 축소하는 마당이라 노력에 비해 성취비율이 현저히 낮다. 낙담이 의기를 가라앉히는 현상을 지켜보는 체험적 심정 답답하기 그지없다.

  창문을 열어야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있고, 걸어 다가가야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물은 그 용기에 맞추어 모양새를 나타낸다. 삼각 모양이면 삼각 형태로, 둥근 모양이면 둥근 형태로 존재를 그려낸다. 영체가 아닌 이상 무형체 사물은 아무것도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밟아나가는 꿈도 마찬가지이다. 상기할 말은 꿈을 품은 자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는 자명이다. 고된 훈련은 취약한 체력을 단련시킨다.

 세상살이 신기는 귀로 듣지 못한 말을 가슴은 재빨리 알아차린다는 놀라움이다. 소금에 깨를 섞으면 깨소금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