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녁시간에,
거두절미하고
槐江괴강에 비친 산 그림자도 내
명함이 아닌 건 아니지만,
저 석양-이렇게 가까운 석양!-은
나의 명함이니
나는 그러한 것들을 내밀리.
허나 이 어스름 때여
얼굴들 지워지고
모습들 저녁하늘에 수묵 번지고
이것들 저것 속에 솔기 없이 녹아
사람 미치게 하는
저 어스름 때야말로 항상
나의 명함이리!
-정현종 님의 나의 명함 중에서

나는 명함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언제나 나의
넓적한 얼굴과 납작한 코가 그 이름을 대신해 주는 명함이 된다.
누구나,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내민다.
이것은 곧 얼굴이자 그가 살아 있음의 표시일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인은 괴강에 비친 산 그림자가 아니면 석양이 그의
명함이 된다.
어스름한 때 비치는 석양은 그의 안온한 안식처이며 그가 사랑하는
가장 중요한 명함이다.
이것이 그를 존재하게 하는 명함이 된다.
아주 감정적이고 자조적이다.
또한 자연을 벗 삼는 지극히 가벼운 바램이자 마음인 것이다.
누구든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오로지 이 시인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성격의 명함일 수밖에
이러한 감정은 우리들를 때로는 미치게 하는 골수가 된다.
-시인 박연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