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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과 디딤돌 - 이헌영( 세영정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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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01  10: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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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 병원 금요예배에서 A전도사의 마중물'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듣고 성경적이고 믿음에 대한 영적인 말씀도 좋았지만  마중물이라는 아름다운 말을 처음 들은 느낌도 감동적이었다.  ‘마중’ 이라는 말은 “오는 사람이 이르기 전에 나아가 맞이하는 일" 이라는 뜻을 지닌 아름다운 순 우리말이다. '마중하다’ 라는 말이야 누구라도 흔히 쓰는 말이지만, 마중물 이라는 말은 이 나이가 되도록 나는 처음 듣는 말이니만큼 요즘 젊은이들이야 무슨 뜻인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지만 내가 어릴 때 우리 동네에서도 펌프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기 위해서 펌프질을 해보지만 물은 나오질 않고 “뿌지직 뿌지직"하는 목 쉰소리만 난다. 그때 옆을 지나던 한 어른이 빈 펌프에는 물을 한 바가지 붓고 펌프질을 해야 물이 나온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펌프 옆에 준비된 물통에 들어 있는 물을 한 바가지 부은 후에 펌프질을 하니 과연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그 신기한 한 바가지의 물이 그냥 물이 아니라 '마중물' 이라는 것을 칠순이 다 된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좋은 ‘마중물’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알아보기 위해 컴퓨터의 검색창을 두드렸더니 박현찬 지음『마중물, 마음을 여는 신뢰의 물』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바로 그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나는 그 책이 에세이나 명상록이 아닐까 생각하고 구입했으나, 형식은 소설이었다. 한 중소기업의 회장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상태가 되었고, 그런 가운데 같은 업종의 어느 대기업이 그 중소기업의 엘리트 사원이나 연구 업적을 빼앗아가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는 것. 그 중소기업은 위기에 처했고 많은 직원들이 본인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요구받았을 때, 결국은 삶의 원칙과 신뢰의 마음을 일으켜 회사를 구하는 과정에서 '마중물' 역할을 하는 의로운 사람들의 희망적인 이야기가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였다. 책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있어서 감동을 더 해 주었다.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 펌프가 있고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목마른 자는 누구라도 이 펌프를 사 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펌프 옆 모래 속에 묻어둔 물병을 꺼내어 펌프에 부어야 물이 나옵니다. 다음 사람을 위해서 절대로 이 물을 마시지 마십시오. 물을 펌프에 부어 물을 긷고 난 후 다시 병에 물을 꼭 채워두시기 바랍니다.”〉

 태양이 뜨거운 한 여름날 목이 말라서 물 한 모금이 아쉬운데, 아무리 펌프가 있어도 그 마중물 한 바가지가 없으면 물을 마실 수 없다. 마중물은 생명수나 마찬가지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목이 말라 곧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자는 공익, 이타의 마음과 이 물을 붓기만 하면 펌프에서 바로 물이 나올 것이라는 신뢰의 마음이 없다면 그는 자기만을 위해 그 마중물을 마셔버리고 말 것이다. 이것은 당장 배가 고픈 이기적인 사람이 씨앗으로 뿌리기 위해 아껴둔 알곡을 먹어치우는 일과도 같은 것이다. 어떤 학자는 공룡의 멸망 원인을 공룡들의 미래를 보지 못하는 다급한 욕심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먹을 초목을 꽃, 뿌리 할 것 없이 모두 먹어치워 그 식물들의 계속적인 생육을 차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 이 이야기의 학술적인 진위는 알 수 없으나 그 뜻은 한번 음미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펌프는 거의 사라진 세상이지만, 마중물' 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참으로 의미 깊다고 생각된다. 사랑과 신뢰와 존중의 마중물이 있으면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물을 퍼 올려 다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만약 믿지를 못하고 지금 있는 한 컵의 물이라도 내가 먼저 마셔버림으로써 급한 목마름을 축이려고 한다면 결국은 모두가 공멸한다는 메시지를 가슴깊이 새겨 본다.
그런 뜻에서 나는 어느 TV프로그램의 멤버들이 복불복게임을 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하겠지만 나만 살면 된다.' "나만 아니면 된다." 하는 태도는 썩 마땅치가 않다. 나만 살기 위해서 소중한 마중물을 마셔버리면 다른 사람들 모두가 목이 말라 죽은 후에 그 사람도 바로 목말라서 죽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나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았던 ‘디딤돌’을 생각해 본다. 디딤돌이란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마루 아래에 놓아서 오르내릴 때 편하게 디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큰 돌이다. 대청마루 아래에 있는 디딤돌 위에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정겹다. 그런 디딤돌이 없으면 높은 마루에 오르내리기가 어려울 텐데 아무리 어린 아이거나 몸이 불편한 노인일지라도 디딤돌을 디디고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으니, 디딤돌은 마중물처럼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또한 디딤돌이라는 말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바탕이 되는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데에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양국의 관계 개선에 디딤돌을 마련하다.” 라든가,
"부모님은 내가 성공하는 데에 디딤돌이 되어주셨다"라는 표현에 디딤돌을 쓰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남에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남에게 봉사하거나 어려운 일을 맡아서 '마중물' 이나 '디딤돌 의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 아침 일찍 병원에 나와 청소를 하며 병원직원과 환자들을 반갑게 기다리는 P부장, 활기차고 명랑한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해줘서 누구라도 하루 종일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B간호사, 잘 찾아오지 않는 대소가의 카페를 만들어 놓고 친척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L매니저나 고교 동기 카페를 지키는 L 카페지기, 항상 학교에서 돌아오는 자녀들을 마중 나가 기다리는 C 엄마, 칠순이 넘어서도 식목일만 되면 나무를 심는 K 친구, 마지막 떠나는 환우를 끝까지 위로하며 돌봐주는 호스피스 봉사자 H 친구, 주일날 교회 주차장에서 땀을 뻘뻘흘리며 교통정리를 도와주는 M 집사, 현재의 안일한 생활을 뿌리치고 후진국 등 열악한 환경에 나가서 헌신하는 여러분야의 봉사자들, 사역자들, 후배 양성, 학문 연구 등을 지원하기 위해 오랜 세월 절약하며 모아둔 돈을 아무런 조건 없이 사회에 기부하는 분들 이런 분들 모두가 우리 가정과 사회, 나라의 마중물이고 디딤돌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과연 누구의 물이 되고, 어디의 디딤돌이 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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