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구좌읍 비자숲길 62에 13만여 평의 넓은 면적에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군집하여 자생하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비자나무숲으로 천연기념물 제 374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비자나무 1호는 고려 명종 20년(1189)에 태어났다. 나이는 826살이며 키는 14m, 가슴둘레 6m, 수관폭 15m 이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비자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 비자나무 중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며 비자나무숲을 지켜온 수장이다.

   꽃은 4월에 피는데 수꽃은 10개 안팎의 꽃이 한꽃가지에 달리고, 암꽃은 한 곳에 2~3개씩 달린다. 열매는 붉은 자주색으로 익는다. 맛이 몹시 떫으며 구충제 식용유 등으로 사용되고, 목재는 건축재 가구 재료로 쓰인다.

   비자림에 들면 정글 같다. 비자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 어둑한 숲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화산 활동 시 분출된 알칼리성 천연 세라믹으로 만든 산책로는, 빨간 황토 흙처럼 생겼는데 송이(Scoria)라고 하며 원적외선도 포함되어 있고 항균성도 높아서 인체에 좋다고 한다.

   언제 찾아도 안온하고 포근한 숲, 원시림의 기운을 내뿜는 비자림은 늘 푸른 나무들이 주종이라서 4계절 언제 어느 때 찾아도 쾌적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해발고도가 높지 않으면서 평탄지에 조성된 자연림이다.

   봄에는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다른 수목들과 어울려 하늘과 햇빛을 가리고 가을에는 단풍나무가 사이사이에 붉은 물감을 뿌려놓는다. 겨울에는 비바람이 불고 우박이 떨어지는 궂은 날씨에도 방풍 효과로 포근하다.

   따뜻한 지방에서만 자라는 난대성 나무라서 제주도와 남해안에 주로 분포하며, 전북 정읍의 내장사가 북방한계선이다. 비자림에는 다양한 양치식물도 볼 수 있다. 더부살이 고사리, 십자고사리, 바위고사리, 잎이 큰 양면고사리 등 다양한 고사리류가 땅바닥을 뒤덮고 있다.

   비자나무는 어떻게 1,000년 이상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는지도 신기하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왕실이 비자나무 숲에 금표를 세워 직접 보호 관리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주민들이 번을 서가며 총을 들고 숲을 지켰다고 한다. 수령 826년의 새천년 비자나무는 그렇게 지켜졌다.

   비자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아 연중 푸른 숲을 유지하고 있다.  피톤치드가 다량으로 나와 삼림욕에도 최적이다. 혈관을 유연하게 하고 정신적 신체적 피로와 인체의 리듬을 안정시키는 자연건강의 치유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구나 마음을 터놓고 걸을 수 있는 길, 오래 머물고 싶은 쉼터 중의 하나, 비자나무 숲은 천 년 전에도 오늘처럼 환한 미소로 굳센 의지로 절망의 문턱을 넘어 게으름이나 딴청 피울 줄 모른 채 신비를 만들어내는, 그래서 천년의 숲길, 걸으면 구름처럼 가벼워진다.

   따사한 햇살로, 송이 오솔길로, 새소리와 송이 소리의 화음으로, 낯선 향기와 바람으로, 엷게 깔린 안개로, 어떤 환경에서도 태생을 즐기는 비자나무숲에서는 절로 철학자가 된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내딛으면, 영험스런 느낌 속에서 모든 갈등이 소멸되는 푹신한 침대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