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채화칠기로 대를 잇고, 꽃 피운 전통예술의 대표 주자 최종관 4인 가족전을 찾았다. 통영옷칠미술관이었다. 옻칠 특유의 냄새가 온몸을 끌어당겼다. 통일신라 지배계급에서 많이 애용했던,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고품격 예술품이었다.

신라(新羅, 기원전 57년 ~ 935년)는 고구려 백제와 함께 고대 한반도의 삼국 시대를 구성하였던 국가로, 세계적으로 오래 존속한 왕조들 중 하나다. 당(唐)과 동맹을 맺어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는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나·당 연합을 파기하고,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당나라를 한반도 밖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최종관 작가는 채화칠기 분야 숙련기술전수자다. 그는 19살 때 서울에 있는 나전칠기 공방에서 일하며 옻칠 공예에 입문했다. 중요무형문화재 나전칠장 고 김태희(1916~1994) 선생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며 채화칠기 익히기를 38년, '채화칠 2세대 장인'으로 손꼽힌다.

채화칠기(彩?漆器)는 칠우(漆盂)란 옻칠을 한 그릇들을 말한다. 칠기는 동양 특유의 공예품으로, 지금도 귀한 그릇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자개(조개껍데기)를 얇게 붙이는 나전칠기와는 다르게 붓으로 색채 모양을 직접 그린다. 옻 진액에 돌가루나 색을 내는 천연광물성 안료를 섞어 문양을 낸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약 4~6개월이 걸린다. 길게는 1~2년도 걸린다. 보통 35~50회 정도 반복해서 덧칠을 곱게 해야 하는 공정 탓에, 국내에서 채화칠기만을 고집하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제작기술을 가진 채화칠장도 극히 소수다.

2011년 이후 6년 만에 가족전을 준비한 작가들은 각자 차별화된 작품을 내놓았다. 최종관 작가 작품 12점 등 총 32점을 만날 수 있었는데, 책장, 이층장롱 등 오래전부터 옻칠로 만들던 전통 가구를 집중해서 선보였다. 아마도 사랑의 무거움을 지고 고통의 역사를 쓴 것이 아닐까.

부인 김경자 작가는 대중화에 힘을 쏟는다. 컵, 쟁반, 식기, 세면대 등 생활용품에 화려한 색을 입혀, 전통 속에서 현대를 생산하는 유일한 작가로 피로한 현대인에게 진통제처럼 편안한 낙원을 선물한다. 그렇게 현대는 고전을 그리워한다. 그런데 고전 또한 현대를 그리워하니 서로 눈빛이 맞닿아 다정하게 세상을 꾸며야 할 것 아닌가.

아들 최민우 작가는 가업을 이으려고 배재대 칠예학과, 도쿄예술대 칠예과를 거쳐 경일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현대조형예술에 채화칠기 전통기법을 더한 실험적인 작품을 내놓고 있다. 따라서 가족전에 공개한 'Piece(피스)'는 생활 공예품과 전혀 다른 느낌을 주므로 뭔가에 아슬아슬 매달려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한줄기 빛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딸 최다영 작가는 부모님께 전수한 옻칠 회화기법에 현대적 디자인을 결합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한 '뱀'도 옻칠을 단순화해 디자인적인 요소를 돋보이게 했다. 이론과 실기를 겸비해, ‘다음’이 기대되는, 차세대 인물로 떠오르는 세상의 무지갯빛이다. 자애롭고 부드러운 손끝 색채, 누구에게나 ‘다음’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최종관씨 가족은 지난 14년 12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미술관(Denver Art Musuem)으로부터 초청받아 직접 제작한 작품들을 전시·해설하고, 채화칠 과정을 시연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특히 중국, 대만, 일본, 유엔, 미국(시카고), 프랑스(파리) 등에서도 전시회를 열고 채화칠을 전 세계에 적극 알리는 작업을 벌여왔다. 

전통공예건축학교 배재대 칠예과 겸임교수를 맡아 후학에게 "전통기법이란, 오랜 세월 동안 지켜져 내려온 것을, 그 세월 속에서 또 새롭게 계승해야 하는 우리의 자산이다"라고 말했다. 공간과 세대를 넘어 채화칠기를 연구하는 최종관 가족을 통해, 예술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는 귀중한 자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