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들은 옛 동창의 이야기다. 언제나 밝은 얼굴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외모와 세련된 언어가 돋보이는, 짧은 시간에도 눈과 귀가 확 쏠리는, 어느 좌석이건 간에 분위기까지 한순간에 사로잡는 친화력이 뛰어난 동창이다. 언뜻 보아도 다시 만나고 싶은 그냥 끌리는 사람이다.

 그렇게 밝은 동창에게 아픈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회식이 끝나고 머뭇거리는 동창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뭐하느냐고 한마디 던졌더니, 동창의 사랑은 겉치레와 허장성세로 짜인 바탕 위에 세워졌기에, 아낌없이 주어도 허상이 되었단다.

 그 깊은 그늘을 양지로 바꾼 동창. 과거를 껴안고 산다는 것은 아름답지만 미래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완벽한 사랑이란 진입도 어렵지만 무한의 종소리 같은 것인데, 어쩌다가 한숨 있는 사랑, 쓸모없는 여유, 불안한 분홍빛 등‘기도 없는 사랑’즉‘사랑 없는 사랑’이, 마침내 서쪽으로 떠나갔다는 것에 대하여,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하는 것이 뚝배기 같은 신화가 된다.

 동창님! 사랑의 미몽에서 빨리 깨어나셔서 다행입니다. 사랑에 두 갈래의 길이 있을 때 반드시 그 두 길을 같이 갈 수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능력의 한계를 떠나서라도 정신이 한쪽 방향만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회한의 눈물을 흘릴지언정 그때 선택한 길을 두고두고 후회해서는 안 됩니다.

 삶의 질을 발전시키면서 현실과 대결하고 미래를 밝게 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윤집궐중(允執厥中:진실로 중심을 잡아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그 길을 이해와 용서를 통해 같이 걸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의문에 젖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한다?

 사랑에 대한 깊은 의문을 쌓다 보면 선택에 대한 균열이 점점 커져서 지각변동이 오게 되고, 결국은 그 지각변동으로 블랙홀에 빠져 허덕이는 주어를 술잔에 따른다. 그 술잔의 무한성은 개인의 숙명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가슴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문득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로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향수에 젖어도 이미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가 전류처럼 짜릿하게 흘러도 그게 허구로 가득 찼을 때는 과감하게 과거를 버리자. 그래서 추억은 역설적으로 위장과 가면 뒤에 숨어서 민낯을 드러내기 때문에 시리게 아름답다는 것이다.

 누에도 다섯 번 잠을 자고 다섯 번 허물을 벗는다는데, 과거에서 탈출하지 않았다면 어쩌겠다는 것인가. 현실은 가파른 비탈이고 삶은 고달픈 노동인데, 언제까지 핏물처럼 번지는 그 사랑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아프게 할 것인가. 사랑이 떠나간 저녁을 그냥 지나가도록 하자. 꽃 피는 좋은 시절은 다 갔다. 새로운 꽃을 피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