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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진 시간의 기억 - 홍경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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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2.22  14: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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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것 생명이 없는 것 모두 눈물 나는 시간이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숨을 참는 법이 바닥없는 공포라는 것을 알 때쯤 임진각을 찾았다.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약 7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남북분단이라는 비극적인 현실을 상징하는 색다른 장소다. 판문점까지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 남북으로 혈액 순환이 차단된 그곳에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실향민이나 참전용사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지만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실의 벽이 높아 그 뭔가를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6·25세대다. 01대에서 10대 초반까지 짚신이나 검정고무신을 신고 배고픔을 잊기 위해 송구(봄철에 먹는 소나무 껍질), 참꽃(진달래), 잔대, 더덕을 찾아 산속을 헤매기도 했다. 10대 중반부터는 부모님의 교육열로 중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한 손엔 책을 한 손엔 곡괭이를 들었다.
 
 구름이 구름을 구경하고 강물이 강물을 구경하고 철조망이 철조망을 감시하는 임진각 3층 전망대에 서면, 임진강과 자유의 다리 일대의 경관을 볼 수 있으며, 반공 전시관·전적 비·미군 참전 기념비, 통일공원 등을 둘러 볼 수 있다. 부근에는 통일로와 나란히 달리던 경의선이 끊어져 있고‘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표지판이 있다. 세월을 묶고 오후를 묶고 나를 묶고, 나는 화석처럼 굳어 갔다.
 
 다가 갈 수도 없고 기다려도 만날 수 없는 곳에서, 발자국을 찍으려면 의사소통이 있어야 하는데, 의사소통이 도리어 걸림돌이 된 전쟁의 끝에서, 번영의 발자국 때문에 나는 웃으며 20대를 보낼 수 있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야간에는 아르바이트로 경제활동을 시작했다. 자취생활이 푸르게 물드는 시기였다. 졸업과 동시에 직장을 잡고 하얀 미소는 고달픔을 잊었다. 그러므로 우는 법을 모른 채 고무풍선을 쥐고 뛰노는 아이처럼 그냥 아이였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쟁 영웅으로 영원히 살아있다. 현재의 우리가 죽어도 이미 기록으로 그 이름들을 높이 기리고 있기 때문에 미래로도 이어진다. 그것이 역사다. 그리하여 울음을 참고 견뎌 온 시간이 이곳에서 넋을 기리고 망향제를 올리는데, 아직도 물음은 많고 대답은 없다. 하여 무한 영원의 시간인 평화누리공원 곤돌라에 올라, 이름 없는 용사에게, 북에 두고 온 부모형제자매에게 예를 표하며 엄숙하게 임진강을 건넌다. 
 
 바람이 느슨해지고 하늘은 파래도 마음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곤돌라 속에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본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장년 시절은 바람결을 따라 걷다가 희뿌연 속살을 들여다보면 붉은색, 풀썩 주저앉은 시간에는 울음을 가두고 박자가 없는 노래를 부르다가 벌떡 일어서서 나를 별이라고 부르며 어둠 속에서 빛나기 위해 실로폰 소리를 내는 기인이 된다. 그렇게 성장한 현재를 고이 지키는 것이 아름다운 나라 사랑이 아닐까.
 
 다만 세상에 대해 말해야 할 때 침묵했고 침묵해야 할 때 말했기 때문일까. 나는 나의 아픈 매질을 참으며 열렸다 닫혔다 하는 삶의 순간순간이 어쩌면 임진강 북단의 경사진 길옆에 있는‘지뢰 표지판’같다. 빈 가지 끝에서 부는 바람이 세차다. 이 모든 게 내 삶의 잔해 같기도 해서, 섬뜩한 철조망 저 너머에서 아스라이 안개가 피어오르는 소리를 듣는다. 같은 장소지만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에게는 이국적인 느낌이 있는지? 곁은 그저 희희낙락이다. 순간 가슴이 아팠다.
 
 결국, 목구멍에는 딱 한 마디 말이 가시처럼 걸려 있었다. 3·8선에서 적멸에 든 얼굴들과 실향민의 상처 앞에서, 나는 그분들 앞에 오래도록 허허로 서서 짐승으로 운다. 이 말을 뱉어내려고 애를 쓸 때마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그리고 내가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 이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기억의 되새김은 계속되겠지만 아픔은 이제 끝났으면 좋겠다. 역사의 제목이 바뀌고 여기는 어디인가? 웃음이 웃음을 이기지 못하고 잦아들지 않았으므로 더 큰 웃음소리는 요란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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