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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처신 - 윤 정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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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1.05  14: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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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2023학년도 수능(수학능력 평가)이 끝난 지 어언 몇 주 지났다. 오십만 명이 넘는다는 금년의 응시생 중에도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어 희희낙락하는 학생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대한 것보다 못 미치는 성적이 나와 당황하고 좌절하는 학생이 많이 있을 듯싶다. 그 당황하고 좌절한 학생 중에, 인정하기 싫지만, 내 손녀와 손자도 끼어 있다. 
 
 지난 일 년, 아니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삼 년 내리 오직 단 하루 수능 날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싶게 이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만 한 것을 나는 안다. 세상의 온갖 재미난 놀 거리 유혹과 꿈틀거리는 젊은 혈기를 누르고, 학교와 학원만을 쳇바퀴 돌 듯하며 입시(入試) 공부에만 전력투구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한 아이는 너무 긴장해서 첫 시간 시험을 망쳤다고 하고, 다른 아이는 온종일 긴장 끝에 너무 지쳐서 마지막 시간 시험을 망쳤다고 한다. 정작 정식으로 성적 발표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시험 당일 저녁 본인들의 가(假)채점 결과를 가지고 두 집이 다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다. 전교에서 최(最)우수 성적을 내던 아이들이라 학교 선생님을 비롯해 주변의 실망이 아주 큰 듯싶다. 
 
 우리나라의 입시제도가 참 이상해서 꼭 도박을 하는 것 같다. 단 한 번의 객관식 시험으로 운명이 결정되는데, 선호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게 모험의 결과물이고 운수소관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싶다. 상향지원을 했다가 자칫 실수로 수능점수가 잘못 나오면 한두 점 차이로 성적 등급이 갈리게 되고, 그 동안 아무리 공부를 잘한 우등생이라도 수시 지원 대학의 탈락 뿐 아니라 정시로도 원하는 대학의 지원이 어려워진다. 안전하게 하향지원을 한 경우 아무리 수능점수가 잘 나왔더라도 더 좋은 대학으로의 번복 역시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조언(助言)을 해 준다는 소위 ‘컨설턴트’란 직종이 성업(盛業) 중이고, 무속인을 찾고 싶은 유혹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고, 일류대학이 성공을 보장하는 게 아니니, 꼭 일류대학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당사자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시험을 쳐서 상급학교로 진학하던 옛시절, 당시 일류 여자중학교로 명성이 높던 K여중에 응시했다가 낙방해서 그 학교에 다니던 언니에게 놀림을 당하고, 수심(愁心)이 가득하던 어머니의 얼굴을 차마 마주 보지 못하고 죄인이 되어서, 이 후 수 십 년을 지우고 싶은 아픈 상처로 그 실패의 기억을 가슴 속 깊이 지니고 살아 온 나다. 좌절하고 자책하고, 누구보다 아파하고 있을 손자녀들에게 이 시간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거나 힘이 되지 않을 게 뻔하다.
 
 아이들 엄마에게서 들으니, 마지막 학기말 고사도 1등급 유지할 성적으로 잘 보았고, 수업일 수 채우느라고 매일 등교도 꿋꿋하게 잘 하고 있다고 한다. 선생님이랑 친구들 만나기가 싫을 법도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본분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정시의 기회도 있는 등 아직 당락(當落)이 결정되지 않았지만, 원하던 대학이 아니면 재수(再修)를 하기로 마음먹는다니, 나는 다만 기도할 뿐 소리 없는 응원으로 지원하려고 한다. ‘열심히 하라’거나 ‘너는 잘 해낼 줄 믿는다’ 등의 말이 아이에겐 그 말 자체가 스트레스고 벗어나고 싶은 짐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삼년 간 내리, 학교에서 학원에서 또 부모 등 가족에게서 받은 기대의 무게가 아이들의 어깨를 너무 짓눌러 오늘의 실패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기도 한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오늘의 좌절이 아이들에겐 속으로 더 단단해지고, 내실(內實)을 기해 더 잘 성장할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가 되고, 그 부모에겐 혹시 그간 교만했다면 회개하고 더 겸손해질 단초가 되리라 믿는다.
 
 전국의 모든 수능을 망친 젊은이들이여! 
 재수(再修)가 필수(必修)라기도 하고, 한 번 실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는 말도 있고, 멀리 뛰려면 우선 몸을 움츠려야 하듯이, 한 번의 실패로 너무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은 길고, 진부한 얘기지만 성공으로 가는 길은 다양한 때문이다.
 어쨌거나 나는 내 손자녀를 위하여 이 연말 할머니의 격려를 담은 선물을 예쁜 리본으로 묶어 준비할 생각이다. 그리고 또래보다 조금 늦을지는 모르지만 훌륭한 의료인이 되어 이웃 아니 인류를 위한 큰 족적을 남겨 달란 주문을 속으로 외며 가만히 안아 주려 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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