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뉴스
기고 & 사설
김영탁의 고향으로 가는 길 - 홍경흠
.  |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3.06.10  13:50:1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전화로 몇 번 뵌 고향 대선배님으로부터 두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연리목에 핀 무궁화』였다. 그 중에서 눈이 마주치자마자 온기가 훅 다가오는“고향으로 가는 길”이 거울 같았다. 보통 거울 속에는 모습만 있고 소리가 없지만 신기하게도 소리가 들렸다.
 
 선배님은 놀라운 직관력을 가지고 계신 게 틀림없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보는 귀와 눈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면 고향 가는 길을 가슴이 터준다. 버들강아지가 군락을 이룬 강변길을 가로질러 교량 위를 지날 때는 건너편 빨래터에서 아줌마가 방망이 든 손을 흔들어 주는 길,
 
 창호지처럼 점점 얇아지는 기력이 향수를 한 움큼 뜯어 쥐면, 이성이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본능에 근거한 수런대던 풍경들이 푸르게 웃어, 세월이 가도 시들지 않는 변함없는 정취가 물씬 풍기는, 그 그리움을 쓱 닦으면 이마의 주름이 담아 놓은 소리가 쏟아져 나와 하루하루를 버티는 바위가 되는 중력으로,
 
 먼지 속을 달리고 달려 도착한 종착역은 을지로 6가 서울운동장 앞이다. 장장 14시간 비포장도로를 달려온 노정은 기진맥진 파김치가 된 채, 서울 사람이 되어 간다. 삶이 술빵처럼 부풀던 날도 있었겠고, 구름처럼 정처 없을 때도 있었겠고, 어쨌든 가지런한 빗살로 머리를 빗고,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발자국 딛는 자리마다 조금씩 시렸지만, 잎 넓은 큰 나무가 되고 싶다는 것은, 대숲의 맑은 바람 소리로 산다는 것이므로, 차가운 비가 겨울을 부르는 밤이면 더욱더 부족한 지식에 대한 사랑을 듬뿍 쏟아 부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태양이 되기 위해 미치도록 힘껏 달렸다. 
  
 와중에 스물한 살에 찾아온 병마를 안고 진갑을 사시다가 저세상으로 가신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도 형수도 가시고, 그렇게 빈 집은 결국 헐리고 지금은 잡초만 무성한 빈 터로 남아 있어서, 주마등처럼 스치는 수많은 이력을 소환하면, 모두가 사랑인 것을, 모두가 덕분인 것을,
 
 올바른 경험을 통한 언행의 일치가, 정직한 호흡으로 일어나, 온몸으로 밀고 나갈 때, 세상이 밝아진다는 선배님의 일갈은 귀감이다. 특히 수많은 이별이 통로 없는 절망의 벽을 깔끔하게 넘는 감동을 주었기에 큰 박수를 보낸다. 한마디로 삶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 예사롭지 않은 철학서이다.
 
 마침내 찾아간 고향집은, 담벼락 옆에 터 잡고 살던 난초가 주인을 알아보기라도 하듯 뾰족뾰족 얼굴을 내밀며 웃어준다. 한양 가는 버스길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마을 앞 고개턱, 어머니가 지켜주던 이 고갯길을 당일로 되짚어 혼자 넘자니 갈기갈기 마음이 찢긴다. 대대로 물려받은 지갑이 이젠 내 고향집이다.
 
 불가항력의 표독스러운 시간에 저항은커녕 살아온 길도 지워져 간다. 지금은 오로지 내딛는 발걸음의 증상들로 병원을 찾아갈 아뜩함은, 늘 한가로워 보이지만 언젠가 허공에 대고 구급차를 불러 달라 외칠 때가 오겠지, 이렇게 자연의 섭리는 고정된 형식 속에서 박제화 된 삶일 수밖에 없다 해도, 
 
 청소와 환기를 수시로 한다. 아내에게서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를 듣는다. 비정기 모임에 나가 볼까. 도착하지 않은 빛처럼 아쉬움이 눈부셔, 문득 뒤돌아보면 무명옷 입은 부모님이 보이고 말을 걸어도 응답이 없다. 그래도 고향으로 가는 길은 꽃길, 역랑 있는 김영탁의 글을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 저작권자 © 금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금천뉴스 서울특별시 금천구 금하로 793, 118호 (시흥동 벽산 1단지상가)  |  대표전화 : 02-803-9114  |  팩스 :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민주
등록일 : 2011.10.28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04923   |  발행인 : 배민주   |  편집인 : 노익희
Copyright ⓒ 2011 금천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cn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