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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길 -홍경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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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8.07  12: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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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한 지 53년 만에 서울역 시계탑 아래서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는 남녀노소 다수가 손목시계를 보거나 시계탑 시계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습이 바스락한 낙엽 같아 보였고, 그 낙엽을 밟고 설렘의 주인공이 금시라도 도착할 것만 같았다.
 
 평면 위를 부산스럽게 오가는 사람들, 만나자고 약속한 친구는 보이지 않고, 곁에 있던 한 분이 전화를 거는데 내 전화기에서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았더니, 아, 글쎄, 우린 서로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한 채, 그렇게 곁에서, 너, 너, 너, 하면서 어색하게 웃으면서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성실과 정직 그리고 헌신의 속도가 목숨보다 귀했으므로, 자기만의 연출로 어느 한 곳에 치우침 없이 각자도생은, 직선의 날렵한 몸짓으로 세상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좌판대 위에서 거센 세파와 맞서 삶의 승리를 굳혀야 했기에, 헤쳐나갈수록 좁아지는 길에서 그 결과물을,
 
 노년에 풀어 놓았을 때 숨을 고르게 쉴 수 있다면, 덤으로 푸른 삶까지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럼 수많은 느낌표가 절정을 이룰 것이다. 우리들의 날갯짓에 거리가 시끌벅적해졌다. 걸어온 길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바람이 우리들의 모습을 필사했다.
 
 각자의 깃발로 익어가는 삶, 선명하고 섬세한 색깔들이 웃음으로 일어섰다. 단꿈을 품은 설계는 진행형, 나누는 이야기는 현재형, 푸른빛으로 번식하는 계절에 딱 맞는 힘으로 우린 시장기를 면하며 다시 앞날을 논했다. 마침내 광속으로 마침표를 찍고 머릿속 표지판을 따라 휘경동에 위치한 모교로 향했다.
 
 기억은 인간에게 준 신의 특별한 은총이다. 우린 기억을 통해 과거를 새롭게 만났다. 그리고 과거엔 몰랐던 새로운 깨달음도 얻었다. 여기에 마리 로랑생(M Laurencin)의『잊혀진 여인』시 한 부문을 소개한다.“죽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입니다”이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슬픔이요,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일 진데, 우린 처음엔 서로 알아보지 못했으나 말 몇 마디에 단번에 알아보았으니 그게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희미해지거나 사라지기도 하는데 우린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기억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단단한 기억은 수업 시간에 엉뚱한 짓하다가 교수님께 혼났던 일, 막걸리를 기울이며 현실에 울화를 터트리다가 미래의 청사진을 그렸던 일, 친구 집에서 밥 얻어먹던 일, 대운동장에서 힘겨루기 했던 일, 의견 충돌로 싸움도 할 뻔 했던 일, 미팅에서 만나 결혼도 할 뻔 했던 일 등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이어서 중간고사 시험을 앞두고 모두들 열심히 공부를 하였으나 커닝으로 벼락을 맞기도 했던 일 이후 시험 때는 왠지 모를 긴장감에 휩싸여 밤을 지새워 중요 문장에 볼펜으로 밑줄을 쭉쭉 긋거나 공책에 꾹꾹 눌러 옮겨 쓰기도 했던 일, 도서관에서 떠들다가 조용히 하라는 주의를 받기도 했던 일, 등의
 
 이야기는 헤어질 시간도 잊은 채 다정의 꽃을 활짝 피우는데 후드득 비둘기 날아오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긴급 피난처럼 몸을 일으켰다. 기어코 다다른 이별, 걷는 발걸음이 무겁고 시렸다. 교문에서 허기진 그리움이 아쉬움을 움켜쥔 채 우린 우리답게 헤어지자면서 서둘러 네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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