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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노인 - 송골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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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0.04  18: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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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끝자락 전남의 한 동네. 인가(人家) 없이 한산하다. 이편에선 야트막한 산림능선에 가려져있어 보이지 않는-서너 가구가 사는 윗동네와 곧장 연결된 경사면 도로 좌측 변으로, 간이건물 컨테이너 한 동만이 고작 눈에 띠일 뿐이다. 그 이면차도 건너가 뭍과 잇대어진 서해바다 끝자락이다. 미개발 지대라, 웃자란 오월의 연초록 풀들로 온통 둘러싸여 있다. 그 뒤편 퇴적층이 겹겹으로 두텁게 쌓인 야트막한 산지도, 속을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로 수목이 울창하다. 자연 풍경 그대로이다.
 
그 도로 중도에 일자 형 10미터 남짓의 편평한 샛길이 있는데, 한 동뿐인 컨테이너 진입로이다. 승용차 한 대쯤은 능히 다니는-표면이 단단하게 굳은-흙먼지 날리는 비포장 길목이다. 그 진입로 한복판 좌측으로, 황토물이 반나마 정도 담수된 수심 깊은 원 모양의 웅덩이가 있다. 둘레 지름이 대략 3미터쯤 될 성 싶은-잔 돌멩이들이 곳곳에 박혀있는 큼직한 흙벽 안에는, 문짝 없는 냉장고와, 나무상자 같은 물건들이 처박혀있다. 해풍이 실어 날랐을 과자비닐봉지 따위도 둥실 떠다녔다.
 
문득, 자리만의 웅덩이를 연못으로 조성하는 시기에 맞춰, 일대를 정비하여 사람들을 유입하는 관광지로 탈바꿈했으며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자외선이 강해 제법 날이 뜨거운 데도, 노크에 꼭 닫은 컨테이너 문을 열고 보통 신장의 체모를 드러낸 사람은, 헝클어진 백발에 짙은 눈썹 아래 두 눈빛은 잔영의 잠결로 흐리멍덩하고, 덥수룩 수염의 안색은 햇볕에 검게 탄 칠순노인이었다. 거덜 난 노숙자처럼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후줄근 복장에서는, 기개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이 맥이 풀려있다. 진종일 허리 구부려 누워만 있는, 나태와 게으름이 배태되어 있을 뿐이었다.
 
할 일은 얼마든지 널려있다. 컨테이너 통행로 주변의 무성 잡초부터 뽑은 다음, 그 맞은편 행색이 허름한 창고 같은 건물 앞 수풀 속에 버린 듯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골동품상점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돌절구·석 수반 등을 바로 세워 존엄의 가치를 높이는 수고를 마친 후, 철재울타리 안 한 마리 흑염소에게 풀을 먹이는 애착이라도 보인다면, 그나마 생환은 돌 것이다.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노인이다. 근 두 달여 독수공방 생활을 하는 동안, 바깥세상과 동떨어져 지낸 침침 때문인지, 무덤덤한 수동적 행동에서는, 타인과 거리를 두려는 불협화음의 바람기운이 멀뚱멀뚱 차갑다.
 
침실 겸 부엌인 컨테이너 좁은 내부는 정리가 안 되어 있어 돼지우리 같고, 수도꼭지 달린 싱크대 평판에 널려있는 소량의 식기류, 코드 뽑힌 빈 전기밥통, 유통기한이 지나도록 묵혀두고 있는 몇 가지 캔 식료품이 들어있는 냉장고의 미지근한 온도, 도대체 취사는 하는 건지 깡그리 메말라있다.
 
“뭘 먹나?” 친구로서 물으니 기어드는 마른 갈대 목청으로 “라면만 먹는다.”라는 답변이 이내 돌아온다. 실상 은색이 반짝이는 라면봉지 안에는, 쪼개서 남긴 생라면 반 토막이 싱크대 위에 얹어져 있었다.
 
제 몸 관리도 구질하게 못 하는 그에게 살아보겠다는 비장의 싹은 진정 있는 걸까? 과연, 사내답게 과감히 일어나서 어떤 멋진 뜻을 펼쳐보겠다는 의지의 뿌리, 진정 묻어두고 있기는 한 걸까? 속을 알지 못하는 어섯눈으로는 규격이 그려지지 않으나, 아직은 체력적으로 건강한 편인 그의 전례로 미뤄 나이에 지쳤단 타령은 다행히 않고 있다.
 
말단공무원 퇴직 후부터 백수생활 13년 차인 그는 생활력이 강한 아내는 물론이고, 분가하여 각각 멀리 떨어져서 지내는 두 자녀로부터도 가장으로서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욕설 험악한 지랄망정의 성질답게, 잔정이 터럭도 없어 밉상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다. 아마 그래서 시비 잦은 화를 잘 내는 인물로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특히, 아내로부터 죽어버렸으며 읍소를 절로 머금게 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있으나 마나 한 노인. 평소에는 말수가 적거나 없어 숙연해 보이나, 사람들과 어울릴 시에는 곧잘 입을 여는 그에게는 찬사를 붙일 거리가 딱히 없다. 딱 한 가지 건져 올린다면, 날마다 드나드는 장소에 한해서, 한두 번 해본 일은 시키지 않아도 의례 때 맞춰 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안에서만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수시로 자세를 바꿔가며, 때로는 가수(假睡) 상태로 텔레비전 화면만을 들여다볼 뿐이다.
 
한마디로 집안 형편에는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그 하나부터 열까지 몸매가 가늘게 말라 약해 보이는 아내의 전적 몫이다. 하는 일이라고는 늘 왕처럼 뒷짐만 지고 있다, 무시하는 멸시를 퍼붓는 타박이 전부이다. 아마 그 혹독한 뒷바라진 시련 때문에, 한 여자는 살아보겠다는 내력을 약분(約分)하며 꼿꼿하게 키웠을 것이라 사료된다. 그 아내와의 나이 차는 다섯 살이다.
 
멋도 모르는 처녀시절 때 시집을 잘못와 남편 같지 않는-도맡은 가사 일로 온몸이 겹겹으로 쑤시고 아픈 데도, 듣고 싶은 살 떨리는 애정 찬 위로는커녕, 병원도 혼자 가도록 내버려 두는 정나미 없는 무지렁이 인간. 외식 한번 없이 생과부로 지내게 하는 정신이상의 무정한 남편. 삼시세끼니 걱정 않게 먹여주면서, 이것저것 챙겨주는 고마움을 일절 모르는 냉대의 무관심 자. 남의 사정을 조금도 이해하려 하질 않는 성질로 양을 매긴다면, 0점일 수밖에 없는 빈 자루 인물.
 
이 한 맺힌 싸대기 응어리에, 아내는 그래서 이혼이라는 단어를 늘 뇌리에 담아두고 있다. 그래서 환경이 전면 바뀌면 사람이 달라지겠지 얼씨구 박수로, 때마침 마땅한 접속에 맞춰 타인 소유 승용차로 모셔 이리로 내려보낸 것이다.
 
삶에는 제 몫과 제 몫이 아닌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는 목축업의 꿈을 안고, 서울에서 먼 이곳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고양이 손이라도 끌어다 써도 모자라는-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철이라 쌍수로 반겨 맞은-연대 위 먼 친척이 먹여주고 재워주는 선의를 넘어, 주 농업 가외로 사육하는 흑염소 열 마리 중 한 마리를 골라 씨종으로 안겨 줬는데도, 그 조차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있다. 꼭 닮은 반추 동물새끼를 줄줄이 낳게 하여, 큰 목장을 세워보겠다는 자생력 의지가 전무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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