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 숙-

   애당초 해외아동을 후원하기로 한 것은, 적은 돈으로 생색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치사한 마음에서였다. 하루 천 원이면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후원자의 대열에 끼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하다는 하느님 말씀을 떠올리며, 그런 엄청난 일을 하고 있음에 스스로 대견해 하고, 천 원의 가치를 되새김질 하곤 했다.
  잠비아의 어린 소년이 몇 년 새 키가 훌쩍 큰 청소년이 된 것을 사진을 통해 보고, 내 작은 역할의 결과물인 양 기뻐하다가, 여자 아이를 한 명 더 후원하기 시작한 게 지지난 해부터다. 우간다의 눈이 큰 소녀는 저에게도 후원자가 생긴 게 너무 기쁘다며 장래 희망을 담은 편지를 몇 차례 보내왔고, 나도 끝까지 그 어린 소녀의 사다리가 되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지난 연말, 선물로 특별 후원금 십만 원을 보내곤 요긴한 물건을 샀다는 아이의 편지를 은근히 기다렸었다. 그러나 몇 달 후 후원기관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는, 아이가 제 부모를 따라 후원기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어디론가 이사를 가버려 후원을 중단했으며 십만 원도 전하지 못했다는 거였다. 새로운 아동을 다시 결연하여 그 돈을 전하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지지난 달 새로운 아동의 프로필과 함께 십만 원의 용처가 담긴 사진이 날아 왔다.
  팔레스타인 북부의 유치원에 다니는 일곱 살 백인 소녀는 데이지 꽃이 만발한 담 밑에서 허접해 보이는 소꿉놀이 한 세트를 들고 웃고 있었다. 발치에는 플라스틱 네모 쟁반과 큰 접시 한 개와 스테인리스 국자 하나, 그리고 화채 그릇 같은 유리 그릇 두 개의 그림이 있는 상자와 용도를 알 수 없는 자그마한 다른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공연히 씁쓰레하고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목돈으로 겨우 살림 나부랭이 몇 개와 소꿉놀이를 사다니! 잠비아의 소년은 같은 돈으로 가족들의 생계에 도움이 될 염소와 담요와 교복과 운동화와 몇 권의 책을 샀다고 했는데.... 나는 내 돈 십만 원이 하찮게 여겨져 아무렇게나 써버린 것 같아 내 특별 후원에 회의가 들기까지 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런 생각이 든 것은 보잘 것 없는 아주 작은 기여에 엄청난 감사로 보상 받고 싶어 하는 내 치졸한 본성 때문임이 깨달아졌다. 더구나 그 곳 물가가 십만 원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한 없이 부끄러워졌다.
   돈을 비롯해 형태가 있는 물질이든, 지식을 비롯해 형태가 가늠이 잘 안 되는 노력의 결과물이든, 누군가를 위해 희사했다면, 주면서 느낀 순수한 기쁨으로 만족해야 한다. 어떤 모습으로든 감사의 반대급부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거래이지 희사가 아닌 것이다. 명예라든가 혹은 어떤 형태의 보다 크고 좋은 보상이 되돌아올 것을 저울질 하며 검은 속내를 그럴 듯이 포장한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인사들이 주변에 널려 있음을 본다. 그런데 딱한 것은, 일반적으로 순진한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저들의 흑심(黑心)에 깜깜하게 속거나 혹은 약간의 의혹은 가지면서도 하찮은 시혜에 부채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대선(大選)이 가까워 오면서 국민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겠다는 소리가 여기 저기 요란하다. 우선은 그네들의 치사한 속내의 정도를 헤아려 볼 일이다. 컴퓨터 무료 백신으로 벌써 오래 전 나라 안에 무담보(無擔保) 빚을 많이 준 인사의 진정한 속내도, 이참에 신세 갚아 주기를 바라는지 어쩌는지 가늠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대가를 기대 않는 희생만이 진정한 희생이고 사랑이며, 하늘나라 장부에 기록될 줄 안다.

(2012.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