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헌 영(세형정형외과 원장)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와 식사를 하러 어느 호텔 양식당에 들어갔다. 식탁 위에 빨간 장미 한 송이가 예쁜 크리스털 잔에 꽂혀있었다. 물끄러미 그 아름다운 장미를 바라보든 그 친구 왈 “이거 가짜 조화(造花)구만! 난 너무 예뻐서 만든 것인 줄 알았지!” 그 장미가 생화(生花)라는 것을 알고 하는 말이다. 인간이 만든 향기도 없고 생명도 없는 플라스틱 조화(造花)가 진짜가 되고 하나님이 만든 생화(生花)는 가짜로 취급 받게 된 것이다.

   우리 병원 옥상에 있는 정원석도 가짜 바위가 진짜 바위보다 보다 더욱 진짜 같다. 옥상의 정원에는 하중(荷重)이 무거운 정원(庭園) 석(石)은 벽 쪽 주변으로 배열하고 중앙에는 하중(荷重)이 아주 가벼운 인조 바위를 멋으로 배열했다. 중앙은 하중(荷重)을 견뎌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짜는 묘한 무늬가 선명하게 있는 것들로 골라 왔고 가짜는 가능한 한 자연석처럼 만든 것이라 병원 방문객들에게 물어보면 거의 반대로 말한다.

   어느 날, 치과 병원엘 갔더니 너무나 아름다운 난(蘭)들이 적당한 위치에 멋을 풍기며 아름답게 피어 있어 그 원장님의 품위가 더욱 고상해 보였다. 그래서 나도 작지만 저러한 고상한 난(蘭)을 구해보아야 갰다 싶어 원장에게 그 구입처를 물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으나 환자를  치료중이라 다음기회로 미루고 돌아왔다. 헌데 3주 후에 다시 치과에 둘렀을 때도 그 난(蘭)들은 시들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향을 맡아보고 손으로 만져보니 조화(造花)가 아닌가.  아! 속았구나! 허탈한 마음을 감출수 없었다.

  요사이 유행하는 주상복합 아파트는 철조 건물로 배란다의 외벽이 두터운 유리벽과 철제 프레임으로 작은 통풍구를 닫으면 완벽하게 방풍이 된다. 그리고 햇볕이 쪼이면 배란다는 바로 건조해지고 만다. 그래서 이러한 구조 때문에 베란다에 화분이나 분제를 키우기가 쉽지 않다. 여의도의 일반 재래식 아파트에 살 때는 커다란 나무뿌리를 잘라 거꾸로 새워 만든 장식위에 난(蘭)들을 부쳐 놓으면 난(蘭)의 실 같은 뿌리들이 고사목의 뿌리들을 휘감고 잘도 자랐다. 그러나 주상 복합의 베란다에는 습도 조절도 어렵고 겨울에 물을 부어 파이프가 얼기라도 하면 야단이 난다. 그래서 보라매타운의 주상복합에 이사 온 후로는  베란다에 화초를 기르지 않는다.

  아마 그러한 연유로 조화가 가짜조화(생화)를 압도하는 모양이다. 생화를 말려 걸어두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더욱이나 조화는 매우 싫어했다.  그러던 나도 점차 세태에 물들어 이젠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다. 요사이는 그림이나 조각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조화가 생화를 압도하는 세상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꽃에는 생명이 있어야하고 향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