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나는 까치밥이라는 수필집을 내면서 10년 전(약 1994년경) 병원 옥상정원에 심은 감나무에 대해 수필을 쓴 적이 있다. 예상외로 그 감나무는 종자가 좋아 크고 맛있는 보시감이 열렸다. 그리고 그 감나무에는 특별히 거름도 주고 잘 보살폈다. 그래서 그 감나무에 감들이 빨갛게 보기 좋게 익어 옥상정원에서 쉬고 있는 환자나 직원들을 즐겁게 해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감들은 익기도 전에 환자나 이웃 주민(?)들이 하나 둘 훔쳐서 딴다. 까치밥도 남김없이 따버리니 수년전부터는 하는 수 없이 우리도 감이 완전히 익기 전에 먼저 따서 전 직원에게 나누어주고 홍시가 될 때를 기다려 먹도록 한다. 감만 따 먹으면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 몰래 따먹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감나무 가지도 수차례 꺾여 20년이나 지난 지금도 맛있는 감이 열리긴 하지만 상처를 많이 받아서인지 아직 충실하게 자라지 못하고 있다.

  우리병원 남쪽 담장 옆에 약 10년 전 병원 관리하는 박 부장이 심은 감나무가 있다. 이것은 돌감나무라 “왜 종자도 알아보지 않고 저따위 감나무를 싶었느냐?”고 내가 박 부장을 나무라고 천대를 했든 감나무다. 이감나무도 감이 열리나 맛이 없어서인지 길가에 인접해 있어도 아무도 따먹지를 않는다. 나도 그 감나무나 감은 쳐다보지도 않고 잎이 다 떨어질 때까지, 까치가 다 파먹어도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난겨울 우리병원 금요예배에 설교를 하는 안정자 전도사가 설교시간에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여러분 나는 세영정형외과에 오면 뒷 정원이나 옥상에 나무가 있어 참 좋습니다. 특히 오늘은 병원을 들어서니 뒷 정원에 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에 감이 빨갛게 조롱조롱 달려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릅니다. 그 풍성한 하나님의 은총에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오고 감사를 했습니다.” 매사에 감정이 풍부한 분이지만 빨간 감들이 주렁주렁 풍성하게 달려있는 것을 본 안 전도사님의 얼굴은 참으로 즐거워 보였다. “여러분도 그 감나무를 감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십시오.” 설교 후 나도 정원에 나가 그 아름답게 매달려있는 감을 바라보며 그동안 내가 천대한 것을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옥상의 맛있는 감나무는 매년 초가을에 없어지고 나를 실망시키는데, 내가 천대한 남쪽 정원의 돌감나무는 추운 겨울이 될 때가지 빨간 감들이 매달려있어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못난 자식이 집안을 지킨다는 옛말과 미인박명이란 옛말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잘 생긴 나무는 집짓는데 쓰이기 위해 빨리 없어지고 못생긴 나무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아 수백 년 제자리를 지키며 아름드리로 자라 새들의 보금자리도 되고 사람들의 쉼터도 제공한다는 옛말을 다시 되새기며 돌감나무에 달린 빨간 감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본다.

  그리고 채근담(菜根談)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되씹어 보며 단감나무와 돌감나무의 운명을 생각해본다. <재산은 많을수록 쉬이 화(禍)를 초래하고, 큰 나무는 바람을 부르고, 높은 명성은 몸을 상하게 한다. 고로 존귀한 지위는 비천한 자의 근심 없는 자유로움 보다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