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교문화의 본산이라 불리는 성균관 석전교육원에서 오래도록 ‘제례(祭禮)’강의를 해온 김경선 교수는 “제사가 간소화되는 것은 시대적인 당연한 결과고 또 제사 간소화가 바람직하다”라고 주장한다. ‘한자리에 모여 조상을 기리고 가족 간의 화합을 다지는’ 제사의 본래 의미만 실현할 수 있다면 형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Q.지금과 같은 제사 형태가 자리 잡은 게 실상 언제부터인가?

A. 우리나라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제사를 지낸 것은 조선 시대 주자성리학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이후부터다. 조선 초기에는 신분에 따라 제사가 달랐다. 왕들은 4대 봉사, 1품 이상은 3대 봉사, 7품 이상은 2대 봉사, 일반서민은 부모제사만 지냈다. 당시엔 제사만 보고도 신분을 알 수 있었다. 조선 중기 ‘예송논쟁’ 등 당쟁이 예(禮)와 얽히면서 예(禮)가 자꾸 복잡해지면서 양반층은 4대 봉사를 시작했다. 갑오개혁(1895년) 이후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너나없이 4대 봉사를 안 하면 상민이나 천민출신은 근본이 양반이 아닌 것이 탄로 날까 두려운 마음에서 4대 봉사에 집착했다. 이게 ‘전 국민의 4대 봉사’ 유래다.
* 예송논쟁: 효종과 효종비가 승하했을 때 인조의 계비였던 자의대비(慈懿大妃)가 얼마의 기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 전개된 두 차례의 예절 논쟁을 말한다.

Q.지금은 신분제가 사라졌다. 굳이 자신의 근본이 양반임을 자랑하기 위해 또는 양반이 아니었던 것을 감추기 위한 4대 봉사를 계속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A. 한번 머릿속에 박힌 인식이 사라지기는 쉽지 않다. 1960년대에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정의례준칙’을 발표했을 때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4대 봉사를 2대봉사로 줄이며 추석과 설에만 명절제사(예전엔 한식, 동지, 유두 때도 명절제사를 지냈다)를 지내고 제사상도 간소화하라는 게 핵심이었다. 다들 ‘박 대통령이 禮를 모른다.’며 말을 듣지 않았다. 제사가 대폭 간소화된 것은 최근이다. 산업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Q.제사상을 간소하게 차리고 절차도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가?

A. 예의 기본서는 ‘주자가례’다. 조선 후기 때 대학자 도암 이재가 ‘사례편람’을 출간했는데 지금까지도 주자가례와 사례편람은 예를 논하는 사람들이 가장 숭상하는 책이다. 주자가례와 사례편람에는 제사상을 직접 그린 ‘제찬도(祭粲圖)’가 있는데 매우 소박한 편이다. 갑오개혁 이후 4대 봉사가 유행하면서 소위 ‘상다리 부러지는 제사상’이 생겼다.

Q.상다리 부러지는 제사상이 며느리 들의 불만과 가족 간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A. 제사의 본은 ‘조상을 추모하고 가족들이 모여 유대감과 화합을 다지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사가 변질되었다. 만약 제사의 형식인 음식준비 때문에 집안에 분란이 일어난다면 과감하게 형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집에 찾아온 조상이 많은 음식을 먹고 자손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게 좋겠나? 아니면 밥과 국 한 그릇을 먹더라도 자손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겠나?

Q.그래도 너무 간소화하는 것은 禮에 맞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 

A. 전통문화는 절대 변하지 않는 게 아니다. 모든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바뀐 그 문화가 새로운 전통문화가 된다. 제사가 달라져야 한다. 그 핵심은 ‘제사 간소화’다. 우선 횟수 줄이기가 대세다.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 모두 8분의 기제사와 (설, 추석)차례상 등 총 10번씩이던 제사를 합쳐서 연 2~4회로 줄이는 게 일반적인 풍토가 되고 있다. 설과 추석에 차리는 차례상(茶禮床)은 간소화되는 추세다. 사실 이는 정확하게 표현하면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사 비용과 제사 준비도 모두 장남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것은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 옛날 얘기다.
  “제사는 조상님의 은덕을 기리는 것으로 정성이 중요합니다. 이런 마음만 변치 않으면 됩니다. 앞으로 시대에 맞게 제사가 변화하지 않으면 祭祀가 아예 없어질 수도 있어요. 시대 흐름에 따라 이제는 달라질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자손들에게 제사 형식을 바꾸도록 얘기하고 있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의 가문인 진성이씨(眞城李氏) 대종손 이세준(65세)씨 이야기이다.

  이씨는 복잡한 제사 절차를 대폭 바꾸려 고민 중이다. “보통 제사 때는 삼헌(잔을 세 번 올림)을 하는데 이를 단헌(잔을 한 번만 올림)으로 줄이고, ‘유세차~’로 시작하는 축문도 쉽게 뜯어고칠 계획이다. 어려운 한자가 많아 제관들마저 뜻도 모르고 올리는 경우가 많다. 축문을 한글화하면 추모의 참된 뜻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조선시대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파평윤씨 노종파 종가는 제사를 간소하게 지낸다. 이 전통은 조선 중기 명재 윤증(明齋 尹拯) 선생의 유훈에서 시작됐다. 명재는 “훗날 못 사는 후손이 나오면 제사가 경제적인 부담이 될 테니 祭物보다는 마음으로 간단히 제사를 지내라”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노종파 종갓집에서 차리는 제사상은 단촐하게 제철 과일과 나물, 밥과 국, 그리고 적뿐으로 총 9가지를 넘지 않는다.
  더 차리고 싶어도 차릴 수도 없다. 윤씨 가문에는 대대로 대물림돼 내려오는 제사상의 크기가 가로 99㎝, 세로 68㎝에 불과하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상은 더 간단하다. 차례상은 밥과 탕, 나물과 적이 빠진다. 명재의 13세손인 윤완식씨(56)는 “설, 추석 茶禮는 말 그대로 차만 올려놓고 간단히 하는 것인데 언제부턴가 허례허식 때문에 祭禮를 올리는 것으로 변질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예법에 관한 어떤 책도 차례 때 상차림을 그려 놓은 책은 없다. 그저 큰 접시에 송편이나 떡국 같은 시절 음식을 담고 그 사이에 제철 과일과 나물 몇 가지를 곁들이면 된다고 했다.” 방동민 성균관 의례팀장의 설명이다. “명절은 원래 제삿날이 아니다. 옛사람들이 명절이라고 잔치를 즐기면서 조상을 추모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당에 약간의 차와 음식을 올렸는데 그것이 차례(茶禮)다.”
  국립민속박물관 최순권 박사도 같은 얘기를 한다. “원래 조상 제사는 기일에 지내는 기제사를 일컫는 것이었고, 차례는 제사가 아니라 명절을 맞이했음을 조상에게 알리는 간략한 의식이었다. 茶禮에 올리는 제물도 차과포(茶果脯)와 시절 음식을 차리는 정도로 간소하며 축문을 읽지 않고 단헌의 절차로 거행했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茶禮가 점차 중시되면서 차례상에 올라가는 제물도 기제사에 버금가는 음식들로 채워졌다. 이는 제사를 가문의 위세를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 때문이었다.

  제사와 관련한 각종 인식도 바뀌는 중이다. ‘제사는 무조건 장남이 지내야 한다.’는 인식이 깨지고 있다. 장남이 제사를 맡아 지낸 풍습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유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재산과 조상 제사를 장남이 독점적으로 물려받는 사례는 거의 없었으며 부모의 재산은 아들, 딸 또는 출생 순서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분배됐고 조상 제사도 공동으로 함께 비용을 분담했었다. 이를 ‘윤회봉사’라 한다.
  그러나 17세기에 유교가 본격적으로 정착하면서 재산상속과 제사계승에서 장자가 우선권을 갖게 됐다. 제사를 맡을 장남에게 재산을 좀 더 많이 물려줘 불만이 없게 한다.
는 취지였다. 그러나 1989년부터는 친족법이 개정되면서 모든 자녀에게 재산을 균등하게 상속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예전처럼 장자가 모든 재산을 물려받지도 못하는데 여전히 장자가 제사를 도맡아 지낸다면 합리적이지 않다.
  제사의 의미는 ‘근원 돌아보기다.’ 정종수 국립고궁박물관장 집은 형제들이 제사를 돌아가면서 맡는다. 정 박물관장은 “윤회봉사를 하니 6남 1녀가 싸울 일이 없다.”며 윤회봉사를 적극 권유한다.

  “家家禮라는 말이 있다. 집마다 家禮가 다르다는 의미다. 제사든 뭐든 각 가정이 처한 상황에 맞게 가족끼리 합의하고 그에 따르면 된다. 다른 사람이 참견할 게 없다.”고 하는 김경선 성균관 석전교육원 교수의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사 형식은 간소화되고 있지만 제사를 왜 지내는가에 대한 명확한 생각과 중심은 있어야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욱 박사는 “일상적인 삶 속에 묻혀서 자칫 잊기 쉬운 나의 시원(始原)을 되돌아보고 기억하도록 하는 게 제사다. 제사를 통해 내가 태어난 곳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내가 나아갈 곳을 바라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