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숙

 언제부터인지, 퇴적된 시간에 이끼도 한참 낀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음식의 간을 잘 못 맞추겠다. 짠지 싱거운지가 도무지 가늠되지 않는 것이다. 어떤 때는 터무니없이 짜게 만들고, 그랬더라 싶어 조심하면 거의 무염식(無鹽食)을 만들기 일쑤다. 그래서 생긴 버릇이, 식구들 앞에 우물쭈물 음식을 내놓으면서, 내 입에는 괜찮은 것‘같은데’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묻곤 눈치를 보는 일이다. 그러면서, 나이 들어 둔해진 미각이 연출한 나름대로 이유 있는 시행착오라며 스스로 면죄부를 주곤 한다.
 헌데, 시각이나 청각 등 오감(五感)을 통해 느낀 바도 액면 그대로 표현하는 일이 근래 들어 부쩍 어렵고 자신 없어졌다. 좋은 그림을 보면서 사심 없이 감탄하고, 아름다운 선율에 순수한 열정으로 몰입해지지가 않는다. 공연히 다른 사람의 기호 여부를 저울질 하고, 내 느낌이나 혹은 생각이 다중(多衆)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부득이 의견을 내놓아야 할 때에는 어미(語尾)에 ‘.... 같다’는 접미사를 슬그머니 붙이곤 한다. 도망칠 뒷길을 미리 마련해 두자는 심사다.‘좋다'‘싫다'‘그렇다’‘아니다’처럼 내 생각을 분명하게 말했을 때 혹시 겪게 될지 모를 안티의 저항을 미리 차단하자는 잔꾀다.
 생각이나 의견을 말할 때의‘.... 같다’라는 수식어는 불확실한 단정을 나타내는 말로, 얼마든지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그럴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부하고,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려는 저자세의 뜻을 은연중에 내포한다.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집중공격에 주눅들어서일까, 아니면 소신을 분명히 하여 뜻을 굽히지 않다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 예를 지난 역사에서 많이 보아서일까, 요즘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의 지극히 사적인 생각조차도 버릇처럼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혹은 예쁘고 귀여운 아기를 보면서도,‘맛있는 것 같아요’혹은‘귀여운 것 같아요’등 애매하게 표현하여 중간을 유지함을 본다.
 모두들 스스로의 느낌이나 생각에 확신이 없는 자신감의 상실이 이 시대 우리 사회의 트렌드인지, 아니면 국어 교육의 잘못으로 어법(語法)을 옳게 익히지 못한 탓인지 알 수 없다. 우리 민족이 전래적으로 좋아하는 색깔조차도 중간색이라는데, 늘 취해 온 어정쩡한 입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오랜 세월 자기 의견을 분명히 표현하지 않는 게 미덕으로 길들여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지난 8월 말 서울시(市)의‘전면 무상급식’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는 굉장한 도전이었다. 투표를 하는 것이‘나쁜 행위’로 명명되어 널리 광고된 터에, 투표장에 간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담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투표장에 가는 나쁜 행위를 대낮에 공개적으로 하면서 자기의 속내를 드러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텔레비전을 통해 장관 지명자 청문회의 공방전을 보았다. 나라의 지도자들 입에서‘.... 같지 않으냐?' '.... 같다’등 수없이 불명확한 단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같다’뒤에 숨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얼버무림의 나열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비겁함과 소신의 부재, 그리고 다른 이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소심증의 다른 표현이다. 적어도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사람들의 입에선 그런 모호하고 무책임한 표현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너 나 없이 당당한 언행의 옹골찬 열매를 거두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