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장  박  종  우 
                                                                                          (시인ㆍ수필가)

  희망이 솟구치는 새해 아침이 밝았다. 이로서 임진년(壬辰年)은 역사의 블랙홀로,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서 현재가 다가왔다. 현재란 시간은 어제 우리가 그토록 열망했던 미래요, 행복해야 할 시간이라 매우 존귀하다.
  동양의 월력(月曆)으로 따져서 올해가 계사년 ‘뱀띠 해’다. 육십갑자에서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따져 계사(癸巳)라 하고, 이를 열두 동물에 비유해 ‘뱀띠 해’라 했다. 뱀을 간사하다고 하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뱀이 이브(하와)를 유혹해 선악과(善惡果)를 따 먹게 한 것에서다. 선악과란 태초부터 ‘금단의 열매’ 인데 이브를 꼬드기어서 따 먹게 한 뱀은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요사스런 동물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다. 뱀은 하느님으로부터 형벌을 받아, 동물이면서도 발 없이 기어 다니며 산다. 뿐만 아니라 제 몸을 감싸고 있는 껍질을 벗겨가며 살아야 한다. 탈피(脫皮)하지 못하면 자신의 껍질에 갇힌 채 죽어 갈 수밖에 없다. 그런 운명을 지닌 동물이 바로 뱀이다.
  인간의 경우도 이와 같다. 뱀처럼 피부를 벗길 수는 없지만 습관, 생각, 욕망 그 모든 것에서 거듭나는 탈피행위(脫皮行爲)를 해야 한다. 이런 행위야 말로 자아실현을 구현하는 지름길이다. 묵은해를 맞아 자신을 옥조였던 상처들, 인과관계에 있어서 응어리져 매듭으로 남게 한 것들을 말끔하게 벗어 버리는 계기를 마련해야 그나마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 새롭게 새 인간, 새 마음을 다짐하자. 그동안 옥조였던 껍질을 뱀과 같이 벗고, 몸체를 늘릴 수 있도록 어제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자. 이것이야 말로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참 뜻을 되새기는 것이다. 그 정신을 성찰,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정립되는 것이다.
  잘 살펴보면 뱀이란 동물은 혐오스럽게 생기기는 하였어도 지혜롭고, 상서(祥瑞)러운 동물이다.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의술(醫術)의 신(神)’이요, 허물을 벗어가면서 거듭 살아가는 죽지 않는 ‘불사(不死)’의 상징으로 그려지고 있다.
  12년 전인 2001년에 새천년을 맞이한다고 얼마나 흥분했던가. 그해도 바로 뱀띠의 해다. 우리의 속담에 ‘곧기는 뱀의 창자와 같아라’ 라는 말이 있다. 겉보기에는 몸체가 구불구불해 곧은 곳이라 곤 어디 한군데에서도 찾아 볼 수 없지만, 장기를 일렬로 배열하고 있는 동물이 바로 뱀이다. 의외로 곧은창자를 지닌 흔치 않은 동물이다. 그런가하면 겉보기엔 의젓하게 직립해 있어도 뱃속의 창자를 꾸불꾸불 복잡하게 뒤엉키도록 구성하고 있는 것이 인간들의 몸이 아닌가.
  다시 시작되는 새해는 어제처럼 실천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지 않는 오늘이 되도록 다짐하자. 뱀의 해를 맞아 뱀의 탈피하는 삶에서 교훈을 얻어, 부끄럼 없는 현명한 삶을 살겠다고 밝아오는 동창(東窓)을 바라보며 다짐하고 또 다짐하자. 새 출발하는 힘으로 내 인생의 삶을 알차게 경영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