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경 흠(논설위원)

   지하철은 따뜻한 아랫목이다. 직장을 출퇴근 할 때마다 나는 굳게 다짐하지만 매일 헛수고만 한다. 졸지 말아야지, 졸지 말아야지를 되풀이 하면서, 이리저리 밀리고 떠밀려도 몸을 꼿꼿이 세우고 덜커덩거리는 소음에 눌려 어느새 잠들고 만다.

   아차 하고 눈을 뜨면 내려야 할 곳에서 한두 역을 지나친 후다. 번개보다 빠르게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직장을 향해 뛰어가던 내가 이젠 꾀가 늘었다. 지하철역을 빠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편으로 달려가 다시 지하철에 승차한다.

   조직이나 상사가 무섭다기보다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다른 동료들은 언제나 출퇴근 시간을 잘 맞추는데 왜 나만 출퇴근 시간을 못 맞추나 싶어 곰곰 생각해보니 나의 속도가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업무에 임함에 있어 급하게 서두르다보니 에너지가 배로 소모가 되었다. 빠르게 처리한다는 것은 순서가 바뀌거나 문맥에 흠결이 생기는 경우가 있었다. 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결제를 득하다가 일침을 맞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찬찬히 뜯어보면 이런 실수를 만회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심성을 발휘하면 이제는 늦는다고 일침이다.

   이래저래 피로가 누적되어 출퇴근의 지하철에서 언제나 잠든다. 물론 엊저녁의 잠은 고민과 반성으로 선잠을 잤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 싫어졌다. 나는 나를 찾기 위한 운동을 아무도 모르게 시작하였다.
  
   원인을 태초에서 찾았다. 안락하고 안전한 어머니의 뱃속 같은 환경의 반대쪽을 걸었다. 졸음이 오면 최대한 근육을 꼼지락 거렸다. 한참을 하다보면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땀이 흐르는 동안은 잠들지 않는다. 계속해서 온몸을 조금씩 줄기차게 움직이면 지하철의 진동과 박자가 맞아떨어져 재미가 붙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의 움직임은 리듬을 타게 되고 그 리듬에 맞춰 근육운동을 하다보면 졸림 현상은 달아나고 내가 나에게 낸 화도 풀리고 어느새 평온해져서 덤으로 새로운 아이디어까지 얻는다. 내가 왜 이런 방법을 이제야 생각해 냈나? 스스로에게 비아냥거리며 바보 같은 자신을 꾸짖는다.

   환승한 507번 버스에서 독산3동 주민 센터 정류소에서 내렸던 나는 아예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집으로 걷는다. 맑은 밤이다. 집에 다다랐을 때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뒷골목을 한 바퀴 더 걸었다. 싸늘한 밤공기가 좋았다. 옛날에는 허둥지둥 집으로 막 들어섰던 내가 이렇게 여유를 부리다니? 아내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웬일이에요, 싱싱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