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火,anger), 화(火,Fire), 화(禍,disaster)는 서로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화(anger)가 나서 불(火)을 지르고 커다란 화(禍)를 입는 경우는 개인이나 가정, 국가에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그래서 태국의 틱낫한 스님은 화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하여 설법도하고 책도 내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애독하고 있다. 그러나 화의 문제는 나 개인의 삶이나, 우리의 가정의 삶에서나, 사회나 국가의 삶에서도 우리의 중심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우리를 깊은 수렁에 빠트리곤 한다.

  서해안 기름 유출사고, 이천 냉동 창고 화재의 아픈 기억이 아물기도 전인 2008년 2월 11일에 강제철거 당한 토지의 보상에 불만을 품은 한 노인의 화가 방화로 이어졌다. 이 화재(火災)로 600년 역사의 국보 1호 숭례문이 전소(全燒)되었다. 또한 구정 후 뉴스에 한 홀로된 노인이 자녀 3남매 중 한 놈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홧김에 자기 집에 방화를 한 기막힌 사건도 있었다. 1원도 되지 않는 성냥개비 하나가 화를 만나면 수천억 원의 산림을 태워버리기도 하고 300원의 라이터가 화를 만나면 국보 1호를 태워버리기도 한다.

 화가 화(火)를 일으키고, 화(禍)가 된다. 모든 사람은 잠재의식(潛在意識) 속에 폭발물을 가지고 있고 이 폭발물은 열등의식(劣等意識) 등의 뇌관을 건드리면 폭발하게 된다. 이러한 폭발사고는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 부부간, 부자간, 고부간, 형제간에는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기에 서로 언쟁이 붙었을 때 아주 쉽게 그 뇌관을 찾아내고 터뜨리는 것이다. 잘못하면 산불처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즐거운 술자리를 마련하고 형제간에 오래간만에 회포를 풀고 과거를 회상하며 그동안 쌓였든 오해가 있으면 풀어 버리자는 좋은 만남이 시작된다. 그러나 즐거운 마음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서로가 잊고 싶어 하는 열등의식의 뇌관을 건드리는 일이 허다하다. 별 할 말도 없고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10년 쌓아온 공든 탑을 한순간에 무너트리고 마는 실수를 범하게 한다. 엎지르진 물을 주워 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모이면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격의(隔意)없이 놀아서 좋다. 그러나 술이 한잔 들어가면 가깝다는 핑계로 말을 함부로 하고 친구의 화(火)의 뇌관(雷管)을 건드려 오래간만에 만나 회포를 풀기는커녕 원수처럼 되어 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노년에 접어들면 더욱 조심하여 말하고 말수를 줄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틱낫한 스님도 화가 났을 때 섣불리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며칠 전 슈바이처 박사를 추모하는 생명경외 클럽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한 가지 비사를 들었다. 레이니 대사의 친구였고 두 분 모두 생명경외 클럽의 고문이었든 박봉배 총장의 전언은 우리의 가슴을 써늘케 했다. 약 50년 전 생명경외 클럽의 자문 목사로 있든 레이니 목사가 금의환향하여 주한 미국 대사로 한국에 왔다. 바로 그 당시 북한의 핵문제 등으로 미국 대통령은 화가나 북한에 대한 어떠한 응징을 해야 할지의 여부로 그 당시 주한 미 대사인 레이니 대사와 상의를 했다. 그때 육이오의 참상을 너무나 잘 아는 레이니 대사는 간곡하게 미국대통령에게 무력적인 대응은 하지 않도록 간언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미국 대통령은 화를 풀고 또 한 번의 전쟁의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레이니 대사는 우리나라 1960년대의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었고, 2000년대에 와서는 우리나라의 전쟁의 위기를 잠재운 숨은 공로자로 생명경외 클럽의 모든 회원들은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틱낫한 스님도 ‘한 사람씩 화를 참으면 전쟁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나를 화나게 한 사람에게 앙갚음을 하지 말라’고 했고, ‘남을 용서하는 것도 화풀이의 한 방법’이라고도 했다. 이 자리를 빌려 한국 사람의 한 사람으로 레이니 대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링컨 대통령은 부하 참모가 잘못하여 화가 날 때 그 당시는 참았다가 집에 돌아와 조용히 부하 직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형식으로 써서 모아 두었다고 한다. 그것을 거의 부치지 않고 자연히 그 문제가 해결될 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러한 링컨 대통령의 여유는 항상 마음이 다급한 나에게는 커다란 교훈이 된다. 링컨 대통령이 죽고 그 편지들은 아주 귀한 글로 대접받고 있다고 하니 나도 링컨 대통령의 화를 끌어안는 방식을 배워서 실천해 봐야겠다.

  틱낫한 스님은 함부로 떼어낼 수 없는 신체장기처럼 화도 우리의 일부이므로 억지로 참거나 제거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오히려 화를 울고 있는 아기라고 생각하고 보듬고 달래라고 충고하고 있다. 마음에서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모든 하던 일을 중단하고 자신에게 돌아가서 화라고 하는 아기를 달래라고 충고한다. 의식적인 호흡과 보행은 화를 잠재우는 자장가라고 했다. 화를 처리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그 화를 주위 사람들에게 쏟아 붓게 되고 자신의 화를 끌어안을 줄 아는 사람은 타인들이 화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파진다고 한다. 이것이 자애로운 사람의 모습이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꽃을 피우는 변화의 방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화내는 것도 습관이니 그 연결고리를 끊어라 고 했다.

  나도 스스로에게 타일러본다. “한마디 말로 천양 빚을 갚지는 못할지라도 한마디 말로 가까운 이의 아픈 곳을 건드려 화를 폭발시키는 일은 삼가자”고. 링컨의 화를 다스리는 방법도 배워 화가 나면 조용히 화의 실체를 안고 달래는 편지를 써보자. 살날이 그리 많지 않은데 노년의 똥고집으로 서로가 불편하게 대치할 시간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 아까운 시간에 잘난 것도 없으면서 잘난 체하지 말고, 만나는 이들의 장점을 찾아 칭찬해주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실천해 보는 재미로 살아보자. 그러한 좋은 긍정적인 칭찬이 생각나지 않으면 입을 다물고 귀를 열어 상대편의 하소연을 들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