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매서운 추위의 모서리가 좀 무뎌지는가 싶더니, 양지바른 비탈에선 개나리가 서둘러 웃고, 연이어 벚꽃의 개화 시기가 텔레비전 뉴스의 한 자리를 장식한다. 꽃샘추위의 오르내림 따라 벚꽃이 며칠 빠르게 피겠다느니 며칠 더디게 피겠다느니 하며, 제주도로부터 시작해서 전국의 개화 날짜를 상세하게 보도하는 등 사뭇 조급증을 드러냄을 본다. 혹독했던 겨울 추위를 벗어나 속히 봄을 맞고 싶은 심정의 다른 표현임을 알지만, 거듭되는 아나운서의 ‘벚꽃 멘트’는 듣는 이를 식상하게 하기에 족하다.
 꼭 때를 맞추려던 것은 아닌데, 경북 두메 누옥(陋屋)을 찾는 길은 그야말로 꽃 대궐을 관통하는 길이었다. 고속도로 양 옆 멀고 가까운 산마다 산 벚꽃이 신록 사이로 그려 놓은 파스텔 풍 그림은 아련한 흰 색으로 혹은 오련한 분홍빛으로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방도로로 들어서니 길 양쪽으로 터널을 이루며 굽이굽이 이어지는 벚꽃 길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탄성을 지르게 했다.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드디어 벚꽃이 이 나라 방방곡곡에 상륙한 것이다. 서울 여의도의 윤중로를 비롯해 차(車)길이든 산(山)길이든 전국적으로 가로수로 심겨진 벚꽃이 한꺼번에 만개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저곳의 ‘벚꽃 축제’ 이야기를 들은 법하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다. 왜 하필 경향 각지에 걸쳐 온통 벚꽃이냐 말이다. 봄 소식을 알려 올, 봄에 일찍 피는 꽃나무로 말하자면 매화도 있고 산수유도 있는데, 하필 일본 사람들이 국화(菊花)와 함께 나라꽃으로 좋아한다는 벚나무를 심어 놓고 거족적으로 열광들을 하느냐 말이다. 일본의 벚나무가 우리나라로부터 전해졌다고도 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그냥 감상하면 되었지 거기에 무슨 국수주의적인 감정 이입이냘 수도 있지만, 옹졸한 속내라 그런지 영 개운치 않다. 한일(韓日) 합방 이후 우리나라 임금님의 거처이자 집무처이던 지엄한 창경궁에 온갖 동물들을 들여놓아 짓밟는 한편, 저들의 나라꽃으로 상징되는 벚나무를 심어놓고 창경원 혹은 동물원이라 격하해 부르면서 유린했던 일본인들의 간악한 속셈을 알기에 울분이 끓어오르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의 나라꽃인 ‘무궁화 길’을 본 적이 없다. 과문한 탓인지 그런 길이 있다는 소리도 들어 보지 못했다. 어느 지방자치단체가 마음먹고 무궁화 길을 만들고, 무궁화 공원을 조성해서 우리나라 꽃 무궁화 축제를 할 법도 한데, 모두 몰개성(沒個性)하게 거의 일률적이다시피 벚나무 가로수 길을 만들어 놓고, 해마다 봄만 되면 자찬(自讚)을 넘어 축제를 한다며 흥분이다.
 무궁화가 큰 나무로 크지 않아 가로수로는 적당치 않다고들 한다. 그리고 진딧물이 많이 끼므로 정원수로도 마땅하지 않다고도 한다. 그러나 서울농대 교수이시던 고(故) 류달영 박사님의 <나라꽃 무궁화>(학원사 간)에 의하면, 로마의 구시가인 포(Po)라는 거리 약 2km 구간엔 가로수로 무궁화가 심겨져 있다고 한다. 약 5m 간격으로 심겨진 무궁화는 키가 거의 5~7m쯤으로 우리나라의 수양버들 크기인데, 2~2.5m 높이 정도까지는 한 가지로 곧게 자라 올라가다가 그 윗부분서부터는 가지가 많이 나와 사방으로 퍼져 아름다운 꽃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고 했다. 박사께서는 한국 무궁화와 똑같은 성질의 나무를 가지치기를 통해 그런 모양으로 키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적고 있었다. 한편 로마의 신시가지를 비롯해 뮌헨 등 유럽의 여러 도시의 주택가와 공원 등지에서 갖가지의 무궁화가 정원수로 아름답게 가꾸어져 사랑 받고 있음을 보고 여러 가지로 느낀 바가 많았다고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온갖 나무들로 조경이 잘 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단지(團地) 안 어느 구석에도 무궁화는 없다. 일 년에 몇 차례씩 수목 방제를 하는 것을 보면, 진딧물 때문에 무궁화를 기피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애당초 조경 담당자의 무신경이나 몰지각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칠월 초순께부터 피기 시작하면 약 백여 일을 아침마다 수 십 송이씩 새로운 꽃으로 끊임없이 피워내는 무궁화 꽃을, 단 며칠 간 활짝 피었다 한꺼번에 스러져버리는 벚꽃에 어찌 비교할 수가 있을까. 꽃 종류도 수 십 가지라, 조촐하면서도 기품 있고 산뜻 청아한 잘 가꾸어진 무궁화꽃길이 있다면,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을 명소 중의 명소가 될 것임을 감히 장담하겠다. 날을 받아 축제를 안 해도, 꽃 피는 백여 나날들은 매일이 축제일이 될 것이다. 더구나 무궁화는 공해에도 강하다고 한다.
  내 나라와 함께 내 나라꽃을 사랑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분명해, 사족이 필요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