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초등학교 시절

참 아득한 옛날이야기이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녔던 시절을 지금 생각하노라면 내 눈앞에는 뿌연 안개처럼 무언가 아련히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한다. 요즘의 학생들에 비하면  교육환경이나 다른 모든 것에서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는 사실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을 터이다.
시흥초등학교는 원래 지금의 시흥1동 무지개 아파트 자리에 있었는데 한국전쟁 후  미군이 주둔하는 바람에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때에는 시흥1동 장로교회 자리에서 공부를 했는데 미군이 지어준 천막 안에서 수업을 하기도 했다. 학교가 없으니 주변의 산과 들로 칠판까지 들고 다니며 공부를 해야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공부하던 중 틈틈이 시간을 내어 전체 학년 모두가 피켓을 만들어 선생님의 인솔하에 논으로 밭으로 몰려다니며 핸드마이크로 “학교를 지어주세요,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목이 터져라 외쳐대기도 하였다. 그렇게 목 놓아 외쳐대던 중 제풀에 지쳐서 피로를 느낄 때쯤이면 “나는 학교를 지어 줍니다”라도 실수를 할 때면 학생들이 박장대소하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시흥초등학교는 1911년에 문을 열었으니 이제 불과 면 년 후면 개교 100주년이 되는 셈이다. 학교 역사로 보면 전국에서 손꼽힐 만한 학교임에 틀림이 없다. 특히 출생연도가 졸업횟수가 되는 사례가 일반적이어서 유달리 나이나 졸업연도를 따지기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선 선후배간을 나이별로 끈끈이 연결해 주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문성, 백산, 탑동초등학교 외에 지난 1991년에는 금천, 안천, 신흥초등학교가 분교되었고, 지금까지 3만 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하여 법조인, 기업인, 장군 등 수많은 인재가 각계각층에서 ‘나라의 동량’이 되어 활동하고 있으니 정말 감개가 무량하다.
금천구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로서 금천구청장이 되어 고향발전의 책임자가 되니 고향의 교육환경에 남다른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구가 다른 자치구에 비해 비교적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학생이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학업성적은 우수하지만 돈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에 ‘금천미래장학회’를 만들어 우수한 학생들을 엄선하여 장학금을 주고 있고, 외국의 유명강사를 초빙,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무료로 가르키는 ‘영어체험학습센터’를 운영함은 물론, 관내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영재들을 모아 훌륭한 인재양성을 목표로 영재교실을 운영함과 동시에 방학 때면 몸소 영어체험을 할 수 있도록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교육도시인 뉴저지 주 버겐카운티와 자매결연을 맺고 3주간 현장학습을 하도록 지원하는 등 교육환경 향상을 위해  최대한 의 배려를 했다.
나는 내 고향 금천구를 교육 명문도시로 육성해 나갈 계획을 세우고 주도면밀하게  추진했다. 맹자는 인생삼락 중에서도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을 으뜸으로 쳤으니 역시 나라의 보석이 될 수 있는 훌륭한 인재를 키우는 일이야말로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경부선 통학 열차

유년시절을 거쳐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은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였다. 당시만 해도 관내 인구가 고작 1,500명 정도로 되는 작은 동네였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가 있던 서울역까지 기차 통학을 했다. 경부선 열차를 타고 통학하던 당시를 지금 생각하면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열차내부가 콩나물 시루마냥 꽉 차거나 자리가 없어 지붕에 올라타기도 하고, 문간에 매달리기도 했다. 겨울에 열차 난간에 매달리다 보면 쇠로 된 차가운 손잡이에 손이 달라붙은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학교 가는 아침 6시35분이면 꼬박꼬박 통학열차를 탔다.
그 당시 경부선 통학열차는 차편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학교에서 놀거나 공부를 하다가 조금 늦기라도 하면 돌아가는 차편이 끊기기 일쑤였다. 그럴 때 친구들은 어김없이 우리집인 시흥동 평양냉면집 사랑방으로 몰려들었다.
천안, 평택, 오산, 수원, 서정리 등에서 서울로 통학하던 학생들의 교통편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잘 아시는 부모님이 기꺼이 사랑방을 내주셨기 때문이다. 우리집 사랑방에서 자고 다음날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부모님이 배려해 주셨던 것이지만, 친구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던 때라 일부러 그런 일을 만들기도 했지 싶다. 거의 날마다 평균 열대여섯 명 이상이 우리집 사랑방에 와글와글했지만 부모님은 언제나 귀찮은 기색하나 없이 내 자식 대하듯 끼니를 챙겨주고 빨래를 해 주고 방을 치워주며 수발을 들어주셨다.
통학생들을 거두어 주신 것 만보더라도 부모님은 인심을 잃거나 야박하게 살지는 않으셨다. 언제나 인자하고 화를 낼 줄 모르시던 어머니. 그리고 사람 좋아하고 언제나 어려운 일에 나서서 도움을 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목이 멘다.

호암산 이주민촌

1966년, 고가도로를 만들기 위해 청계천 주변의 판자촌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다시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원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니 그야말로 선사시대같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고가도로를 세우자면 청계천 일대의 무허가 판자촌을 허물고 노숙자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할 상황이었다.
강제철거와 강제이주, 개발독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때 청계천 일대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옮겨간 곳이 경기도 성남과 시흥2동 호암산 자락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조차 준비되지 않은 시흥2동 호암산자락에서 많은 사람들이 야영을 하듯 살아가다 보니 거기서 나오는 각종 오폐물로 인해 자연도 심하게 훼손되기 시작했다.
개발독재와 산업화의 후유증도 앓기 시작했다.
서울의 주변부에 각종 산업시설을 짓다보니 자연스레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에 위치해 있던 과거 우리 금천구 지역에 각종 산업 폐기물을 뿜어내는 공장들이 속속 입주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학생들이 그림을 그릴 때 으레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는 풍경을 그려놓고 좋아하던 시절이었으니 어딘들 그렇지 않았겠는가?
아름다운 녹색의 금천이 회색의 공해도시로 변한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인심 좋고 살기 편하던 금천이 삭막한 공장지대로 변질되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렇게 흐른 세월이 30년 이상이다. 이제는 30년 전에 미련을 두고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기보다 새로운 금천을 아름답게 가꾸는 석이 우리 금천 사람들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구청장이 된 다음 가장 중요한 사업 가운데 하나라고 판단하여 일찌감치 시작한 일이 ‘금천한내 되살리기’였다. 이제는 지난날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지만 아직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