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 숙
                                                                                    수필가, 금천문학아카데미 고문
                                                                          금천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는 것만큼 느낀다는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라 여겨진다.
 어지간히 나이를 먹고 나니, 내 연배의 노인들의 심리가 말을 섞은 경우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훤히 보인다. 그러면서 때로는 연민을, 때로는 어이없는 반감 내지 자괴감(自愧感)을 느끼곤 한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노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본인들이 인정하든 않든, 혹은 스스로 알아차리고 있든 느끼지 못하고 있든, 심리적인 약자가 되어 있다. 심리적인 약함은 대부분의 노인들로 하여금 주변에 폐가 안 되도록 신경 쓰며 조용히 살게 하고 있다. 그런데 억하심정의 발로인지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노인들의 추태도 만만치 않다. 이 경우 상반된 두 부류의 모습으로 표출됨을 본다.
 한 부류는, 스스로 약함을 인정하다 못해 비굴해지기까지 하는데, 이 경우 생활수준의 높낮이나 학식의 있고 없음은 관계가 없는 듯하다. 며느리의 눈치를 보느라고 가정의 행복이라든가 기강을 위해서 어른으로서 꼭 해야 할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한다든가, 전철(電鐵) 등에서 좌석을 양보 받으려고 과장된 몸짓으로 비틀거리는 노인들은 스스로 무시 당할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때 젊은이들이 혐오하고 기피하는 것은 당연한데, 대부분의 노인들은 이를 섭섭해 하며 노여워하거나, ‘너희도 늙어 보라’며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거나, 늙어버린 자신을 과도히 비참해 하며 신세 한탄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그런 한편으로 환심을 사려는 듯 젊은 사람들에게 아첨을 한다는 것이다. 공연한 칭찬이라든가, 어떤 사안(事案)에 대한 마음에 없는 동의 등, 스스로 격(格)을 떨어뜨리는 행위들을 한다.
 한편, 순리를 거부하며 자기를 계속 내세우는 부류가 있다. 사회적으로 좀 성공을 했었거나 학력이 높은 사람 중에 많이 있다. 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무대는 암전(暗轉)되었는데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과거의 작은 성취나 경험을 바탕으로,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데 기고만장하여 자기 주장을 펴며 군림하러 든다. 상대방이 공감한다고 할 때까지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아집(我執)이 강해 남의 의견을 듣거나 타협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항상 자기 잣대로 남을 판단하고 비평하고 그리고 불평한다. 자기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저주에 가까운 원망을 주변에 늘어놓는 경우도 있는데, 자연히 주위 사람들로부터 경원시되고 외로운 노년(老年)이 기다리고 있음을 본다.
 이상 두 부류의 예는 경우에 따라 한 사람에게서 동시에 나타날 수도 있는데, 어쨌든 모두 비호감일 뿐 아니라 너무 추하고 처량해 민망하다. 같은 노인으로서 그리고 그 중의 어떤 모습은 내게도 있어서 부끄럽기 이를 데 없다.
 늙음은 자연현상이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어두워지며, 기억력이 흐려지고 판단력이 둔해지며, 노파심 때문에 잔소리가 다소 많아짐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떤 좋은 화장품으로도 젊음의 풋풋한 민얼굴을 당할 수 없으며, 어떤 영약(靈藥)으로도 회춘은 불가능하다. 늙음이 비록 자랑스럽진 않더라도 억울할 일도, 노여울 일도, 더구나 비굴해지거나 기죽을 일은 아닌 것이다. 다만 그 모든 쇠퇴의 과정을 인정하되 당당하면서도 겸손하게 맞이하고, 그 처한 시점에서 스스로의 쓸모를 생각할 일이다. 주름져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외모와 나이 때문에 위축되거나 피해 의식을 가지고 몽니를 부림으로써 평생 곰삭힌 인생 경륜을 소진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품위 있고 후덕해 보이는 노인들의 넉넉한 아름다움은 결코 젊음에 밑지지 않는다.
 거울 속의 나에게 최면을 건다. 그 동안 잘 살아 왔고, 앞으로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가며 언행(言行) 간에 추하지 않게 잘 살자고.
 사회는 당장 눈에 확 띄지는 않지만 조금씩 꾸준히 발전해 간다. 그 발전은 젊은이들의 신사고(新思考)와 역동적인 역할이 견인(牽引)해 감이 분명하다. 세상을 앞서 산 사람으로서 푸근히 바라보고 격려하며 박수를 쳐 응원할 일이다. 욕심이지만, 여기에 보탤 경륜이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