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성호

 사람의 건강의 측정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가장 일상적인 예는 식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 속담에"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영혼을 살찌우는 음악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인체는 먹어야 산다. 그 주식거리는 땅의 소산물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음식에 겁을 낸다. 살이 찔까 봐서이다. 또한 비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렙틴'은 뇌가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식욕억제호르몬을 불러 일으켜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게 한단다. 이와 달리 건강한 사람은 탐식이 강하다. 결혼식장 같은 잔치 집에서 음식을 싸가려는 탐욕적 행위가 무언적으로 민망하듯, 음식에 지나친 집착은 꼴불견이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배의 힘으로 일을 한다"라는 말을 즐겼다.

 삶의 행복 중 하나가 식탁 즐김이다. 우리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라는 말이 있듯이 음식섭취는 인체기능의 원천이다. 미식가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재미로 산다. 이 행복을 찾기 위하여 그들은 유럽이나 동남아 여행길에 자주 오른다. 음식자리에서는 첫째로 마음이 평안하여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음식상에 앉으면 생명부지의 사람일지라도 금세 대화문이 열린다. 반대로 음식물을 두려움에 떠는 긴장감으로 먹는 사람은 밥을 씹는 맛이 모래알 같을 것이라 짐작된다.

 지난 주 목요일(9월5일)에 금천문인협회 남자회원 일곱 분과 이용주 시인의 안내로 용설리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그날이 세 번째 만남이었는데, 첫날에 합의 본대로 가변적 정기모임 약속을 지킨 것이다. 두 대의 승용차가 들어선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들어오고 나가는 차량들을 안내하는 사람은 연세 드신 어르신이었다. 야경 신호 대를 든 어르신의 동작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빈 식탁 잡기 힘들 정도로 식객들로 꽉 들어찬 식당 내는 혼잡했다. 하지만 때마침 예약 석 푯말이 오른 빈 식탁이 있었기에 우리는 기다리지도, 자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는 식사를 즐겼다. 식성이 좋은 필자는 박종우 문화원장이 덜어 남긴 밥을 더 먹었다. 식사 후 우리는 바깥 유료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우리는 입석 채로 잠시 대면한 구수 자리에서 자원에 따라 다음 달 식사대접 자로 김종대 시인을 정했다. 시흥동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잠깐의 짬을 내서 과림 어업장을 둘러봤다. 어업장 둘레로 여러 명의 낚시꾼들이 물속에 들인 낚시대를 간이 의자에 앉아서 바라보며 있었다.

 우리는 만남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친목토대를 다져가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자부심에 젖어들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얼굴만 익힌 인사 정도의 관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데 공감을 같이 했다. 오랜 지기처럼 스스럼없이 농담을 걸며 장난을 칠 수 있다는 우의는 관계가 무르익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현상이다.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던 놀라운 발전에 경탄이 절로 새어 나올 지경이다. 서양 속담에 "자주 만나면 가까워진다" 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만남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 중에 만남이 가장 편한 대상은 가족이다. 팔은 안으로 굽듯이, 가족은 언제나 내 편에 가깝다. 가족은 딱딱한 형식을 끼워 넣지 않는, 아무 때나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정다운 핏줄이다.

 유난히 길었던 폭염이 물러난 후 우리의 최대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8월 말 무렵인 지지난 주에 경상북도 소재 보현산을 다녀왔다. 그 지역을 오며가며 가장 많이 본 사물은, 이젠 성장을 멈추고 나뭇가지마다에 주렁주렁 매달려서, 마지막 여름햇살에 빨갛게 여물어가는 사과와, 들녘을 누렇게 뒤덮은 고개 숙인 알곡의 벼이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