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은퇴 후 알바로 여기저기를 전전하지만 어느 곳에서나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는 언제나 노인의 몫이다. 열린 창문으로 더운 바람이 들어와도 창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와도 군소리 없이 동료를 위해 부인을 위해 설거지를 자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동료의 얼굴에서 부인의 얼굴에서 미안한 기색을 뚜렷이 읽을 수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수저를 놓자마자 자기 일을 보거나 텔레비전 연속극에 눈을 떼지 않는 동료나 부인의 행동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때 이성으로 감정을 억누르며 운동 삼아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생각은 주위 사물에 반응한다. 그 관계가 비록 수평관계라 하더라도 서로의 상생을 위해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마음은 항상 움직이고 변한다는 뜻이다. 감동하고 공감하기에 사나운 편견의 틈새가 벌어지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므로

노인은 마음이 상해도 초심으로 돌아가 웃으면서, 놀이나 연속극 보다 뒷전으로 밀려난 듯한 씁쓸함을 산책으로 때웠다. 산책로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동소이 했다. 부인이 아프다. 젊었을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늙어갈수록 호랑이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극과 반응의 관계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자아와 다른 자아와의 사이에 형성되는 다른 가치는 무조건 참는다는 것이다. 화를 내지 않고 져주면서 산다는 것은 이미 높은 경지의 자아에 도달하였다는 의미다. 따라서 노인들이 갖는 세상의 이치는, 져서 이긴다는 명언을 낳지 않았다 한다.

산에 오르는 길목마다 녹색의 나무와 풀 그리고 각양각색의 꽃들이 반갑게 마중을 한다. 뒤늦게 햇살의 고마움을 알고 햇살 따라 걷다가 나무 그늘만 좋아한 젊은 시절의 풍성한 바람에 걸음을 멈추고 그늘 밑에 있는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추억에 젖으면, 

그간의 살아온 내력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눈앞에 나무들이 서서히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서 자연의 이치를 통해 자신을 반추하고 생활환경에 대해 외적 갈등과 내적 갈등을 동시에 잠재우고 일어날 수 있는 가정 혹은 개인의 수난을 사전에 제거하는 지혜를 산을 통해서 자각한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

새들이 먹이를 찾아 내려앉았다 떠나가고, 청설모도 나뭇가지 사이를 부지런히 왕래 하는 모습에서 산은 준비한 자들에게 가진 것을 묵묵히 내주는 것을 본다. 헌데 사람은 돈이라는 존재를 매개로 선의 혹은 악의로 반응하는 것에 의식개혁을 통해 사람다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을 산을 찾은 후에야 진정으로 알았다는 것에 쓰디쓴 미소를 짓는다는 저 노인, 

인기척에 돌아보니 노인 한 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산길을 걷는 모습에서 삶의 능선을 수없이 넘어온 고독이 진하게 배어 있는 것을 본다. 말없이 걷는 저 노인은 지금 무엇을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 노인에게도 한 때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 한 때는 존재하지 않는다. 노인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데이터베이스에서 정보가 술술 빠져 나가듯이, 사회현상도 어느 순간 허물어지거나 표류하지 않았는가. 하여, 산을 찾아 벗함으로 외로운 가슴에 별이 촘촘히 박혔으면 한다. 자극에 대한 결과가 축적되지 않고 소멸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