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압사 거림사회 회원들과 봉사자 <사진자료 불교신문>

  일요일마다 몸가짐을 정제하고 사찰 공양간으로 달려가는 남자들이 있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 아침에 모여 즐거운 봉사를 한다. 시흥동 소재 호압사 거사림회 회원 30여명과 봉사단체등에서 온 조력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오늘도 1500그릇분의 국수를 누가 다 삶고 설거지를 할까???’ 이런 걱정이 이들을 공양간으로 달려오게 한다.
  보살들의 도움으로 하루 전 표고버섯과 온갖 야채로 채수를 맛나게 우려낸다. 그리고 당일 오전 10시. 아직 점심시간은 멀었지만 거사들은 손길이 바쁘다. 
  국수 삶기는 다년간 봉사한 거사들이 도맡아 한다. 국수를 끓는 물에 밀어 넣고 국수를 젓던 거사는 평소처럼 국수 배식 1시간여를 앞두고 “오늘도 즐겁게 봉사합시다!”라고 소리쳤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손길은 더욱 바빠진다.
  국수삶기는 ‘달인’의 경지가 돼야 제대로 삶는다. 왜냐하면 미리 삶아 두면 불어서 제 맛이 나지 않기 때문에 적기에 삶아 제때에 드시도록 준비해야 한다. 큰 가마솥의 팔팔 끓는 물에 국수를 가지런히 삭삭 밀어 넣고 큰 주걱으로 저어 잠시 잠깐 삶았다가 뜨거운 국숫발을 쏜살같이 건져낸다. 찬물에 국수를 씻어낼 때는 그야말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면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이 빠르다. 콩이 많이 들어 있는 국수는 척척 재빨리 손을 놀리지 않으면 퍼지거나 끊어지기 십상이다. 흔한 일반 밀가루 국수와 달라 더욱 조심스럽다. 찬물을 세 번이나 옮겨가며 국수를 씻어낼 때면 면발은 탱탱해지고 쫄깃해져 식감을 좋게 한다.    이렇게 준비된 국수를 정성스럽게 그릇에 담아 채수 국물에 담겨 김치 반찬이랑 배식된다. 이미 배식 대의 긴 줄이 배식을 재촉한다. 인사와 미소를 나누며 호압사를 찾는 상춘객을 포함하여 요즘 1500분의 국수가 무료 배식된다.
  국수를 삶고 남은 물도 그냥 버리지 않는다. 돌아오는 빈 그릇을 씻기 위해 신속하게 설거지 부스로 옮겨진다.
  콩국물은 식기를 닦을 때 세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세제가 없이도 깨끗하게 닦인다. 설거지 소임자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닦는다며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호압사 거사림회(회장 이상규. 68)는 3년 전 결성됐다.
  거사림회는 지역사회에서도 자비의 쌀 나눔 등 다양한 신행활동에 앞장서면서 호압사 신도로서의 긍지를 갖고 있다. 오는 25일은 부처님오신 날이다. 이날을 위해 수많은 등을 걸고 떼는 거친 일도 손수 맡는 거사림회다. 방생행사가 열리면 교통봉사도 마다하지 않고 ‘인문학적’ 소양이 높은 거사들은 사찰 홈페이지 지대방에 ‘마음으로 읽는 경전’ 등의 글귀를 옮겨 적으면서 전법포교에도 관심을 쏟는다. 최근 호압사가 수탁 받은 요양원 사랑채에서 빚어지는 크고 작은 일거리도 거사림 회가 직접 나서 여러모로 일손을 돕고 있다.
   불교신문도 거사림회의 이같은 봉사에 관심을 가지고 보도를 했다. 불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상규 회장은 “절에서 공부도 하고 수행도 하던 남성불자들이 마음을 모아 거사림회를 만들어 사찰의 ‘머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며 “우리들에게는 우리 절 봉사활동이 1순위도 아니고 0순위”라고 자랑했다. 그는 “정말 개인적인 중대한 일이 없다면 열 일 제치고 일요일마다 절에서 살다시피 한다.”며 “때로는 피곤하긴 하지만.... 뿌듯한 피곤함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십니까?”라며 반문한다. 그의 입가인 이미 행복이 가득했다.
   최기찬(57) 거사도 “이 회장이 호압사 거사림회의 맏형이다. 우리 거사림회 회장님은 언제나 솔선수범하고 특히 회원들 간에 경조사를 꼼꼼하게 챙기는 등 맏형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자랑했다. 
  거사림회 감사이자 올해 포교사가 된 박호규(54)씨는 “우리 절 국수 한 그릇 드시겠다고 멀리서 작정하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며 “관악산 등반하면서 잠시 스친 인연으로 우리 절 국수 맛을 보고 가시는 분들도 많다. 어찌됐든 우리들은 우리 절에서 이처럼 맛난 국수를 수많은 분들에게 대접해 드린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하고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것 같아 너무 좋다.”며 웃어보였다.
  당사 금천뉴스 김홍년 회장도 거사림회 봉사자들과 함께 봉사하고 있었다. 천주교신자인 그는 “호암사 거사림회 회원들이 좋고 그들이 봉사하는 모습이 좋아서 지난해 봄부터 함께  활동하고 있다.”며 “봉사에 종교가 따로 있나요?”하며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 날 국수봉사가 끝나고 대형 솥단지와 그릇 설거지까지 마친 뒤 거사들과 공양간 보살들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남은 국수를 고추장 넣고 양푼에 비벼 오순도순 웃음꽃을 피우며 나눠 먹었다.
                                                                      이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