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소방서장   우  병  호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중국의 요순(堯舜)시대를 평화를 누렸던 시대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요순 임금이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잘해서 대형재난에 적절히 대처했고, 농경시대에 절대 필요한 물 공급을 잘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의 역대 임금들이 대형재난 시 백성들의 민심이반을 막기 위해 노심초사한 흔적을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왕이 세종으로 당시 도성이었던 한성부에는 17,015호에 인구가 103,828명으로 집이 서로 연접하여 담장이 이어져 있고, 대부분 초가집인터라 한 번 불이 나면 대화재로 번져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가져올 수 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였었다. 때문에 세종 8년이던 1426년 2월 15일 한성부 남쪽의 인순부(仁順府)에서 발생한 화재는 이틀 동안이나 계속되었으며, 이로 인해 경시서 및 인가가 소실되어 32명이 사망하는 등 도성의 6분의 1인 2,276호가 연소되는 대참사로 이어졌었다. 이를 계기로 세종 8년 2월 26일 이조의 건의로 우리 역사상 최초로 화재를 방비하는 독자적 기구인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소방관서 설립의 효시로 보고 있다.
  오늘날에는 태풍을 비롯한 지진이나 홍수,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는 물론 화재, 교통사고, 산업사고, 테러 등으로 말미암아 인명 및 재산피해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산업과 IT의 발달은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비상 시 대형 사고를 야기 시키는 역기능도 그만큼 커지게 했다. 때문에 화재진압 및 구조, 구급 등 소방업무의 양도 상대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에서 화재신고를 받고 소방차가 출동한 횟수는 10,499회이며, 구조출동은 83,374회, 구급출동은 414,400회나 된다.
  1993년에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데몰리션 맨’에서는 민간인을 살해한 죄로 냉동됐던 경찰‘존 스파르탄’을 악당들을 물리치도록 하기 위해 되살려낸다. 개구리나 금붕어를 영하 196℃의 액체 질소에 넣어 급속 냉동했다 미지근한 물에 넣어 해동시키면 살아 움직인다는데 근거를 두고 만든 영화인 셈이다.
  진시황이 생전에 그리도 갈망했던 불로초에 의한 영생불사는 차치하더라도 돌연사(突然死)만은 피하고 싶은 게 우리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다. 2000년 4월 잠실야구장에서 경기 도중 그라운드에 갑자기 쓰러진 프로야구 롯데 임수혁(2010년 2월 사망) 선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심폐소생술(cardiopulmonary resuscitation)’이란 단어는 추억을 짓누르는 가슴 아픈 말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선수, 심판, 구단 관계자, 관중 등 3만 여명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심폐소생술을 아는 사람이 없어서일까 절체절명의 임 선수 옆에 모인 동료들이 한 일은 고작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허리띠를 풀고서 구급차에 태운 것뿐이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발표에 의하면, 국내에서 심정지 환자 발생 건수는 1년에 10만명당 40～42명이다. 지난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람은 25,909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5,505명의 4배 가까운 수치다. 집이나 거리에서 심장이 멎었다가 소생할 확률은 2.5%로 미국의 8.4%, 일본의 10.2%에 비해 크게 낮은 우리의 현실 앞에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관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한 켠이 아리도록 시리다.
  지난 5월 8일 제주종합경기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부정맥에 의한 심정지로 쓰러진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 소속의 신영록 선수는 3분만의 심폐소생술과 12분 만에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된 결과 임수혁 선수와 같은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을 하면 생존 확률이 3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8분이 지나면 뇌손상이 심해 회복된다 해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게 된다. 119에 신고해도 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 평균 13분이 걸리는 도심에서 옆에 있던 누군가의 심폐소생술(일명 가슴압박술) 실시여부에 존귀한 목숨이 좌우된다는 걸 다시 한 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심폐소생술의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먼저, 심정지 확인 → 도움요청 및 119신고 → 가슴압박 30회 → 인공호흡 2회 → 회복자세 순이다. 심장이 막 멈춘 상태에선 5～6센티미터 깊이로 분당 100회～120회 속도로 흉부(가슴)를 압박만 해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심정지 환자 중 60% 이상이 가정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심폐소생술을 익히는 것이 가족 사랑의 시작임을 명심하자. 소방방재청을 비롯해 대한심폐소생협회, 대한적십자사,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서울시내 22개 소방서에서는 심폐소생술을 전 국민에게 확대 보급하기 위해 각종 캠페인과 홍보, 세미나, 강연,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해 다각도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심폐소생술 교육은 위에 열거한 기관에 가면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동영상을 보고 요령을 간단히 익힐 수도 있다. 나의 작은 관심과 용기가 소중한 가족과 이웃에게 존엄한 생명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 아름다운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