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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23  16: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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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를 심어 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하나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가녀린 밭을 딛고
3초식 5초식 짧게짧게 혹은
그네들에게 보다 느슨한 시간 동안
날개를 접고 바람을 잠재우고
편편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설빗설빗 선잠이 드는 것만 같았다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없었다
내 열무밭은 꽃밭이지만
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

-문태준 님의 극빈의 전문입니다.

 
바쁘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바쁘지도 않으면서 시기를 놓쳐
일들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낭패다.
이런 일들은 살아가는 동안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뿌리나 줄기를 얻기 위해 열무를 심었는데 게을러
아닌 내가 게을러서 그만 시기를 놓치고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만 흰 열무꽃밭이 준 가난이다.
꽃과 나비의 만남은 시적자아와 자연세계와의 교감이지만
실용적이 되지 못한 나머지 꽃을 얻은 것이다.
그러니 꽃밭에 오는 손님은 불청객인 나비 떼일 뿐이다.
비록 나에게는 뿌리와 줄기가 필요하지만 나비들이 얻어지는 것은

꿀원이고 그것은 현실적인 삶의 전부인 것이다.
느슨하게 공생공존 하는 것이 얼마나 어여쁘고 좋은 일이겠는가!
나비는 꿀을 얻었지만 나에게는 화려한 꽃밭을 얻은 것이다.
인간들의 사회에도 이런 일들은 흔하게 보일 것이다.
나는 뿌리와 줄기를 잃은 가난이었지만 나비는 풍부한
꿀원을 얻은 가난이다.

-시인 박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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