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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염원하던 그 날, 광복-서울남부보훈지청 보훈과 임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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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16  11:5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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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8월 15일. 우리민족은 꿈에 그리던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독립을 이루기 위해 우리 민족은 수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어떤 분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안위를 살피며 죽은 듯 사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러한 이들을 수탈하는 일본을 누구보다 앞장서 도왔던 인물들도 있었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독립 운동은 눈부시고 감동적인 것이었다. 이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이를 탄압하던 일제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것이었다. 전국적으로 독립의 열기가 넘실거렸던 3.1운동 당시를 일본의 한 경찰 관계자는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한민족의 반항은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운동은 어떻게든 확대될 것이다. 3.1운동은 독립운동으로 일제 통치에 대한 경종의 의미였다.”
  1919년 9월 2일 새로 조선 총독으로 임명된 사이토 마코토는 득의양양하게 남대문역(현재의 서울역)에 하차한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왈우 강우규 의사. 일제의 무단통치에 경종을 울리고자 민족의 분노를 담아 던진 강의사의 폭탄은 아쉽게도 사이토 마코토의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이 거사로 강우규 의사는 체포되어 순국하셨다. 하지만 3.1만세운동과 강우규 의사의 기개를 보고 놀란 사이토 마코토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우리 민족에 대한 통치방식을 소위 ‘문화통치’로 전환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두고도 당시 경기도 경찰부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미운 마음은 없습니다. 입장을 바꿔보면 강우규는 우국지사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을 놀라게 한 독립운동의 묵직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변절하고 나라를 버린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났다. 일제는 문화통치라는 명목 하에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었지만 경찰의 수와 장비는 더욱 보강했다. 이에 따라 우리가 소위 순사라고 부르는 헌병보조원에 응시하는 한국인들의 숫자도 계속 늘었다. 1922년 순사가 되기 위한 경쟁률은 약 2.1대 1 수준에 불과했지만 문화정치가 본격화한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그 경쟁률이 10대 1을 웃돌정도로 치솟았다. 3.1운동 직후 일제에 대한 반감으로 응시생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1920년대 중반 이후 헌병보조원과 판임관 등을 지원하는 응시자는 꾸준히 증가한 것이다.
  만일 독립이 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일제와 그들을 위해 부역한 변절자들의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제의 잔재는 광복을 맞은 지 71년이 지나도록 우리 사회의 곳곳에 남아 미래를 위한 도약의 발목을 잡고 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님들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감사는 이러한 잔재를 청산하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토대를 닦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분들의 맑은 정신을 온전하게 이어 받아 후세에 전하는 일일 것이다. 오는 8월 15일은 제71주년 광복절이다. 언제부턴가 그저 하루 쉬는 날이 되어버린 광복절,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 날을 염원하며 피를 흘렸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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