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들과 모인 참에 행복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 친구가 "복잡한 현대에 살면서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하고 서두를 꺼냈다. 다른 친구가 대답했다 “첫째 핸드폰이 없을 것 둘째 TV와 신문을 보지 말 것이며, 특히 정치뉴스는 절대금물 셋째 자가용을 타고 다니지 말 것. 이 말에 또 다른 친구가 한 가지를 덧붙였다 “마누라 잔소리 피하는 기술을 터득할 것" 그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6~70대 내 친구들이니 모두가 서로 의 마음이 통해서 “옳소!"하고 의견의 일치를 봤지만, 길을 가면서 도 핸드폰으로 계속 친구나 애인과 얘기를 나누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신세대들에게 그런 말은 치매 걸린 할아버지의 넋두리쯤으로 생각될 것이다. 우리 친구들은 행복을 위해 자가용을 없애자고 하는 판인데, 신세대들의 꿈은 멋진 스포츠카를 사서 애인과 폼나게 드라이브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자꾸 미디어에서 멀어지자고 하는 그들은 좀 더 멋있는 비디오, 오디오를 시스템으로 갖추지 못 해 안달이다. 그러한 신세대들에게 우리들 '쉰세대‘의 위와 같은 행복론은 미친 소리쯤으로 치부될 것이다.

미국에서 행복학을 공부하고 온 한 고교 동창이 자기의 책 속에 행복의 7대 구성요소로 ‘.마음의 평안’, ‘건강과 활력’, ‘원만한 인간관계’, ‘안정된 물질생활과 건전한 정서 생활’ , ‘보람된 목표와 이상’, ‘자아 발견', ’자아 실현' 등을 들고 있다. 행복학에서의 기준에 일리가 있다면 우리들 쉰세대의 행복론이라는 것이 꼭 치매 걸린 할아버지의 넋두리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요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핸드폰을 갖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러다가는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말만 시작하면 핸드폰을 하나씩 가질 판이다. 젊은 사람들은 핸드폰이 없으면 바로 불안하고 불행 해질 것 같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핸드폰이야말로 위의 행복학에서 말하는 행복의 7대 구성요소 중 어느 것 하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생각 로는 우선 핸드폰 문화가 마음의 평안을 줄 것 같지 도 않고, 핸드폰은 건강한 운동 을 할 시간과 기회를 빼앗아갈 것 같다. 하기야 조깅 중에도 열심히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두가지일을 한꺼번에 하는 능력자들을 간혹 볼 수 있기는 하다. 내 진료실에서 어떤 환자들은 진찰 중에도 핸드폰 받기에 바빠 의사와의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한두 사람과의 핸드폰에 얽매어 있으니 그 외의 여러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새로운 ‘원만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질 리 없다.
또한 핸드폰은 ‘건전한 정서 생활’도 해친다고 생각된다. 옆에 서도 들릴 만큼 소리를 크게 하고 혼자서 이어폰에 귀를 맡기고 있으니 핸드폰 이외에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있다.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기계음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과연 건전한 정서 생활을 잘 할 수 있겠는가?
핸드폰이 어떠한 ‘보람된 목표’를 설정하는데 도움이 될지 나는 잘 모르겠다. 또한 한창 열심히 공부에 매진해야할 어린 시절에 핸드폰에 몰입해서야 어떻게 ‘자아 발견’ 과 ‘자아 실현' 에 도움이 될 것인지 나는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이러한 생각과 평가는 회갑을 넘긴 나 혼자만의 판단이고, 젊은 세대에게 물어보면 전혀 다른 의견이 나올 것이니 꼭 내 말이 옳다고 단정하고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행복에 대한 생각은 각자의 몫이고, 철저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최빈국에 속한다는 방글라데시 국민들의 행복감 지수 가 다른 잘 사는 나라 국민들에 비해서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훨씬 더 높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쉽사리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루하루 살기에도 힘든 가난한 생활에 무슨 행복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웬만큼 긴 세월을 살아보니 이제야 우리 친구들이 하는 말이나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에 비추어보면 방글라데시 국민들의 행복감도 이해가 갈만도 하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의 시야 접촉범위, 활동범위가 좁을수록 우리들의 행복은 크다. 그러나 그것들이 넓어질수록 우리의 고뇌와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진다. 그에 따라서 걱정, 원망, 공포가 중대하고 확대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전철을 타고 가는 도중에 젊은이들의 신기한 핸드 폰 장난을 보면서 단순한 신기함을 넘어서서 짜릿한 전율까지도 경험한 적이 있다. 신림역에서 한 여학생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핸드폰으로 누구에게 소리도 없이 계속 연락을 하고 있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 교대역에 도착하자 애인인 듯싶은 남학생이 우리가 앉은 바로 앞문으로 타더니 바로 그 여학생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여학생 왈 “야! 네 자리 내가 잡아 놨어!"라고 하는 것 아닌가? 달리는 전철 안에서 청춘남녀의 만남이 마치 우주 공간에서 두 우주선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킹하는 것 같았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우리 세대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하는 새로운 생활방식과 문화가 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조건은 우리와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을 것 이고, 우리는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해 줄 수밖에 없다. 그 것이 세대 간의 갈등을 줄이고 더불어 같이 사는 사회를 만드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원고지에 손 글씨를 고집하는 세대와 컴퓨터의 이메일로 글을 전송하는 세대 간의 갈등을 놓고 누가 더 행복하냐?"라는 물음은 어리석은 질문이 될 것이다. 행복은 단순하게 어떤 절대치로 판단 할 수는 없다. "행복은 자기의 분수를 알고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 라는 R로랑의 말이나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조용한 가슴을 안고 일상의 여느 햇빛을 즐겁게 여기며 나머지는 하나님에게 맡긴 사람"이라는 J.V, 체니의 말이 행복학자인 내 친구의 지키기 어려운 행복의 7대 구성요소 보다는 마음에 훨씬 쉽게 와 닿는다.
“자기 분수에 따라 살고, 조용히 일상에 주어진 것을 기꺼이 즐기는 삶!"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면 우선 내 마음속에 가득한 욕심부터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행복의 7대 구성요소, 특히 자아실현이나 보람된 목표설정을 위하여 애쓰는 것이 오히려 행복에 역행 하 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지금은 미국에 들어가고 없는 그 친 구에게 "당신은 행복학을 공부하니 행복해 지더냐?"고 한번 물어 봤으면 좋겠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