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  박  종  우(시인ㆍ수필가)

  “중용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또 중용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철학은 어떤 것일까?”라고 누군가 물어 오면 잠시 고민에 잠긴다.
  도대체 중용이란 무엇인가. 흔히 누구에게 고언(苦言)하려 하면 ‘중용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짐작하듯이 중용이란 ‘중립을 지킨다’ 또는 ‘중간의 입장’ 등의 의미로 이해하는 단어다. 심지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라는 인식은 중용을 잘못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의미의 본질이 왜곡되는 소지가 다분히 있고, 흔히 그렇게 사용되고 있다.
  ‘중용(中庸)’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저변을 알기위해 중용의 한자를 들여다보면, 가운데 중(中)자와 쓸 용(庸)자로 만들어졌다. 단옥재는 “갑골문에 보이는 ‘중(中)’자는 깃발이 펄럭이는 모양이다”라고 말한다. 깃발은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상하, 전후, 좌우로 나부낀다. 그러나 그 실체는 깃대라고 하는 주체다. 깃발은 바람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펄럭이지만, 축인 깃대는 기준이다. 그러니깐 깃발은 깃대에 묶여 있어야 할 필연적 관계에 있다.
  이렇게 갑골문로 본 중(中)자는 중심(中心), 중점(中點) 혹은 센터(center)라는 의미소를 낳고 있고, 안팎을 의미하는 내외(內外)에서 ‘안(內)’를 의미한다.
  김충렬 교수는 “중(中)이란 늘 자기와 타인, 안팎의 연관성에서 판단되거나 설정되는 개념어”라고 말하고, 이원목 교수는 “중자는 나와 너, 혹은 내면과 외면, 중심과 주변, 상과 하 사이의 긴장(緊張)관계, 그 사이의 무게 중심이나 기준을 일러주는 잣대에 해당하지만, 그것은 시간적, 공간적, 다중적 양단(兩端)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의 대가이신 정조임금의 3대 이미지는 ‘책, 종, 달’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철학적 이미지는 그칠 지(止)다. 우리는 정조를 이야기 하면서 활쏘기 50발 중 49발을 명중해 놓고도 나머지 1발을 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서 중용의 의미를 엿보게 된다. 그리고 ‘홍재전서’에서 정조는 “장애가 생겼을 때 무시하고 밀고 나가는 것을 광(狂)”이라 하고, “장애를 무서워해서 아예 출발도 하지 않는 것을 시(猜)”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사이에 있는 것을 중용”이라 강조했다. 즉, 얼마나 적시(適時)에 잘 그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일에서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며, 말을 다 하려고 하지 말라”라는 말도 그칠 지(止)의 용기와 지혜를 말하는 어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중용을 “행복한 삶”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 단단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강해지면 만용(蠻勇)하게 되고, 약하면 한없이 비겁(卑怯)해 짐으로 중간이 바로 용기(勇氣) 즉, “용기가 중용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너무 금욕적(禁慾的)이면 그것도 문제”라고 했다. 이는 자기를 헤치기도 하지만 사회를 원활하게, 건강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지나친 탐닉(耽溺)도 안 좋지만, 지나친 인색(吝嗇)도 안 좋고, 지나친 낭비(浪費)도 안 좋다”고 했다. 적절한 절제, 적절한 관대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이다.
  오늘날 우리 일상에서 험하고 어지러운 일들을 신물이 나도록 듣고 본다. 이런 일들은 정치인, 혹은 권력자들에게서부터 중용이 무너져 그러하다. 공직자들이 중용을 업신여김으로써 발생된 것이다. 심지어 판ㆍ검사들까지 국민들을 업신여겨 마구 날뛰고, 공직자는 생명과도 같이 지켜야할 공무원 윤리마저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친다. 무엇이 그들로부터 이런 만용을 부리도록 했는가.
  참으로 참담하다. 사회는 도리킬 수 없는 무질서한 지경에 나날이 다가선다.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는 것은 예삿일이 되었고, 너를 짓밟아야 내가 산다는 적개심만 판을 치는 사회가 되었다.
  때문에 이제부터 국민들이 정의의 만용을 부려 사이비 지도자들을 혼질(昏窒) 내야할 때가 되었다. 윤리에서부터 공중도덕, 세대 간의 갈등, 조직사회에서 상하 간의 위계질서, 공권력의 부재 등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단죄하고 되돌려 놓아야 하겠다.
  더불어 사는 사회인이면서 남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자기만 옳다는 아집을 일삼는 일부 몰상식한 지도자가 이끄는 사회를 한탄하면서, 이에 저항하고 경종을 울리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야 한다. 참 인간이 보편적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를 정화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국민들이 나설 때가 되었다. 개개인의 권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의 권리 즉, 공익을 위해서 일어서야 한다. 그들이 중용을 업신여기듯이 우리 국민들도 중용을 철저히 업신여겨 그들에게 일침을 가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호수 바닥에 쌓인 침전물들을 정화하기 위해 바닥을 홀랑 뒤집어 놓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야 맑은 물을 담아 둘 수 있고, 따라서 맑은 호수가 조성된다는 원리와 일맥상통하다. 좀 수고스럽다 하더라도 후손들에게 참 사회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중용’이 지배하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함께 나서자고 이율배반적 중용론을 편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가능하다.